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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ing

결혼기념일 조촐한 저녁

by 변기환 2013. 3. 19.

세월이 쏘아 놓은 화살 같다. 남녀가 손만 잡고 자도 아이가 생기는 줄 알았던 스물일곱 철부지 동갑이 결혼 한 지 벌써 열아홉 해가 됐다.


때로는 살얼음판을 걷듯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고, 때로는 외나무다리 위를 건너듯 위태로웠던 위기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슬기롭게 극복하며 알토란 같은 자식 하나를 낳아 지지고 볶으며 오손도손 열아홉 해를 살아왔다.


남들은 결혼기념일에 근사한 곳에서 외식하고 값비싼 선물을 주고 받지만, 우리 부부는 사 먹는 음식별로 안 좋아 하고 건강하게 곁에 있어 주는 게 세상에서 가장 값진 선물이라 여긴다. 여보 맞지?


나가서 먹고 싶어도 집사람 퇴근이 늦어 이 시간에 어디 가서 뭘 사 먹을 때도 없다. 선물은 아이가 그동안 모은 용돈 20만 원을 내놓으며, 둘이서 10만 원씩 나눠 쓰란다. 자식 겉 낳지 속은 못 낳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놈은 겉도 속도 우리 작품이다.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오늘 해 먹을 결혼기념일 음식은 오징어 초무침, 계란찜, 볶음밥, 계란 감자국


오징어 초무침은 데친 오징어와 미나리, 무, 당근을 채 썰어



초고추장에 무쳤다.



계란은 석포면 야산에서 지렁이 쪼아먹고 자란 토종닭이 낳은 유정란. 닭을 야산에 풀어 놓고 키우면 반은 새가 된다. 계란색이 각각인걸 보니 한 배에서 나온 놈들은 아닌 것 같다.



유정란이라 그런지 노른자가 진하지 않고 흰자는 더 걸쭉한 것 같다. 계란찜은 계란을 풀어 체에 내려 알 끈을 제거해야 부드럽게 잘 부풀어 오른다. 이걸 체에 내리는 과정은 인고의 시간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소금과 물을 약간 섞어 찜통에 넣고 쎈 불로 찌다가 불을 약하게 해서 뜸을 들이는 게 포인트



계란 감자국은 멸치 끓인 물에 채를 썬 감자와 새우를 넣고 살짝 끓이다가



계란을 풀어주고 후추를 조금 뿌린 뒤 소금으로 간을 하면 끝, 간을 볼 때는 어느 정도 식은 후 봐야지 뜨거울 때 간을 보면 짠지 싱거운지 모른다. 음식 짜게 먹으면 안 먹는 것 만 못하다.



볶음밥 재료 준비



소식 중이라 밥 한 공기 볶아 둘이서 나눴다.



조촐하지만 정성을 가득 담아 한 상 차렸다.



술은 소주와 맥주를 정량 조제...



집사람이 소천면에 근무할 때 점심을 대 놓고 먹은 집에서 강냉이 죽을 보내왔다. 달리는 차 안에서 인터넷을 하고 로봇청소기가 알아서 청소를 해 주는 시대에 손 많이 가는 느린 음식을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



물에 불려 껍질을 깐 강냉이에 강낭콩(경상도 사투리로 양대), 팥, 수수를 넣고 담백하게 끓였다. 디지탈 카메라가 아날로그 시대 음식을 보니 촛점을 못잡는다.



계란찜도 심심하고 말랑말랑 한 게 기가 막히게 됐다.

여보 행복이란 게 뜬구름처럼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 우리 곁에 있소... 벼는 이웃 벼가 좋아 보이고 자식은 내 자식이 좋아 보인다고 나는 세상 어느 녀자보다 당신이 더 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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