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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Talk

고향은 지금 삽질 중

by 변기환 2013. 5. 10.

할아버지 제사라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습니다. 부모님께서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 정원을 잘 가꿔 놓으셨네요. 영산홍이 예쁘게 폈습니다.


집은 8년 전 제가 직접 설계하고 기초, 벽체, 지붕, 내부 인테리어 등 부분별로 업자를 따로 선정해 매우 저렴하게 지었습니다. 집 짓는 내내 풍수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부모님 때문에 갈등이 많았습니다.



농사로 분주해야 할 건너편 너른 논밭엔 뻘짓거리 삽질이 한창입니다.



집중호우가 내릴 경우 실개천이 범람해 시가지를 덮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지 10대조께서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날 황당한 논리입니다.



그래서 마을 앞을 파내 여차하면 이곳에다 빗물을 가둬 침수를 예방한답니다. 누가 이런 생각을 했고, 어떤 방법으로 시뮬레이션을 했는지 찾아가 싸대기를 마구 날리고 싶군요.



길이 약 십오리, 폭이 겨우 10미터 남짓한 실개천은 아버지 때도 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도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도 넘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년 전 부족한 주차장을 확보하기 위해 시가지와 접한 부분은 복개를 했습니다.


복개를 해도 태풍 매미, 루사, 2008년 집중호우 때 안전했습니다. 불안하면 복개한 부분을 걷어내고 바닥을 좀 더 깊게 파내면 될 것을 말 그대로 삽질을 하는 겁니다.



2008년 7월 23~27일 봉화군 춘양면 일대에 200mm에 가까운 폭우가 내리면서 8명이 숨지거나 실종되고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득달같이 내려와 특별재난 지역으로 선포하고 복구비로 어마어마한 국고를 지원했습니다.


한 봉화군 공무원은 복구비용 일부를 빼돌려 카지노 출입을 하다가 들통이 나기도 했죠. 아마 이때 이 공사를 하기로 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실종과 사망이 발생한 지점은 운곡천의 상류 쪽입니다. 춘양 시가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곳이며, 더군다나 내 고향 실개천과는 전혀 무관한 재해입니다.


당시 재해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비가 집중적으로 내린 탓도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모든 게 다 인재입니다.


비가 내리면 빗물이 농수로나 작은 개울을 따라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땅으로 스며드는데, 최근 농수로마다 콘크리트를 쳐바르고 홍수를 예방한답시고 물 흐름에 방해가 되는 돌들을 다 골라냈으니, 적은 비에도 자연상태보다 더 많은 빗물이 빠르게 하천으로 흘러 듭니다. 집중호우가 내리면 평소 감당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이 유입되니 당연히 넘칠 수 밖에 없지요.



침수피해를 입은 춘양교 주위 역시 왼쪽의 사진처럼 상류에서 쓸려 온 쓰레기와 나무들이 교각에 쌓여 넘친 것입니다.


평소 조금씩 대비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재해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상류 하천 교랑 건설 시 하천 가운데 교각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산림 간벌후 그대로 두었던 나무를 모두 치우도록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새 다리를 놓았고 강둑도 높이고 땅을 돋아 택지를 조성해 분양했으며, 주위 공터엔 체육시설을 해 놓았네요.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입니다.



1년 전 시골집 마당에서 찍은 풍경입니다. 마을 사람 대부분이 저기 보이는 논과 밭에서 농사를 지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자식들 대학까지 공부시키면서도 부족하지 않게 살았죠.


어릴 적 겨울이면 논 주인 몰래 물을 대 꽁꽁 얼려 얼음 썰매를 타느라 해가 지는 줄 몰랐습니다. 지금은 산불 때문에 난리가 날 일이지만, 정월 대보름엔 분유 깡통을 주어다가 구멍을 뚫고 솔간지를 가득 담아 이장 아저씨 몰래 스릴 넘치는 쥐불놀이를 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전기가 초등학교 3학년에 들어 왔고 주위 산이 높아 TV가 잘 나오지 않았으니, 별다른 놀잇거리가 없었던 철부지 시골 촌놈들이 온 겨우내 뛰어놀던 놀이터였던 것입니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전망이 좋지는 않지만, 전형적인 경상도 오지 산골 풍경입니다. 나름 아늑하기도 합니다.



유년시절 추억이 가득한 너른 논밭은 이제 기억 속에 고이 묻어야겠네요. 많이 안타깝습니다.



꽁꽁 언 얼음을 깨고 빨래를 빨던 빨래터도 다 파헤쳐졌습니다. 실개천에 널린 다슬기를 주워 삶아 먹고 껍대기는 곱게 빻아 기르던 닭 먹이로 줬습니다.


당시에는 사료가 없어 옥수수나 풀을 뜯어다 줬는데 칼슘이 부족해 알이 쉽게 깨졌거던요. 그래서 칼슘이 풍부한 다슬기 껍대기를 먹고 껍질이 두꺼운 알을 낳으라는 의미였습니다.


기억은 머리에 저장되지만, 구체적인 기억은 장소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제 기억을 떠올릴 것들이 사라지니 머잖아 내 기억은 어렴풋해지겠군요.



폭이 겨우 10m 남짓한 실개천엔 버들치며 퉁가리, 칠성장어, 가재, 다슬기, 개구리가 흔했습니다. 두 살 어린 둘째 동생은 겨울이면 한 살 많은 사촌을 따라 온 개천을 뒤져 물고기 잡느라 동상에 걸려 겨우내 손이 퉁퉁 부어 있었죠.


동상 걸린 손이 아파 밤새 칭얼거리면 다음날 아버지는 뽕나무 뿌리를 다려 붓기와 독기를 빼주곤 했습니다. 


세월이 가면 당연히 강산이 변하겠지만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오만과 정치논리로 내 유년시절 아련한 기억과 추억들이 저기 돌처럼 마구 파헤쳐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려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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