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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도산서원과 이육사문학관

by 변기환 2013. 10. 29.

청량산을 내려와 20여 분 차를 달려 도산서원 주차장에 도착합니다. 평소 같으면 관람객이 꽤 많을 텐데 오늘은 다들 단풍구경을 갔는지 한산합니다.



주차료 2,000원과 어른기준 관람료 1,500원을 내고 울긋불긋 단풍과 반듯한 소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오솔길을 따라 도산서원으로 향합니다.



내가 왔을 때는 항상 물이 많아 여기에 잠수교가 있는 줄 몰랐는데 가뭄이 심해 잠수교 일부가 드러났네요.



청량산을 굽이돌아 흘러온 낙동강이 안동댐을 만나 유속이 느려져 녹조가 심합니다.



도산서원 건너편엔 조선 시대 지방 별과를 보던 자리를 기념해 세운 시사단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소나무가 많이 우겨져 있어 송림이라고 불렀는데 안동댐 수몰로 송림은 사라지고 시사단 역시 당시 위치에서 10m 이상 단을 쌓아 높였다고 합니다.



아름드리 왕버들 나무의 불편한 자세가 도산서원의 역사를 잘 말해주네요. 본래 도산서원 가는 길은 구릉지여서 아주 험했다는데 안동시에서 인근 지역의 흙을 옮겨와 지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다니기 편하게 만들었답니다.



사는 게 바쁜 마흔 중반의 아저씨들이 처자식 손잡고 역사 현장 체험학습을 시작합니다.



정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농운정사와 하고직사가 있습니다. 농운정사는 기숙사로 하고직사는 노비의 숙소 및 식당으로 쓰인 건물입니다. 하고직사 맞은 편엔 별채인 도산서당이 보이네요.



도산서당은 퇴계가 제자를 가르치던 서당이며 직접 설계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도산서원은 서원과 서당을 함께 조성한 곳입니다. 진도문을 경계로 아래는 서당, 위로는 서원 영역입니다. 따라서 진도문은 서원과 서당을 잇는 통로라 할 수 있겠네요.



진도문 좌·우측으로 광명실이 있는데 각각 서광명실, 동광명실이라고 합니다. 서광명실은 도서를 보관하던 서고며



동광명실은 요즘의 도서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책을 보관해야 하는 건물의 특성상 습기를 방지하느라 누각식으로 지었네요. 광명실 현판 글씨는 퇴계 선생의 친필입니다.



내삼문은 퇴계와 그의 제자 월천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상덕사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상덕사 오른쪽으로는 사당에서 재사를 지낼 때 쓰이는 음식인 재수를 보관하던 전사청이 있습니다.



장판각은 서원의 출판소로 목판을 보관하던 곳입니다. 습기로부터 목판을 보호하기 위해 벽체를 나무로 둘렀으며 통풍이 잘되도록 여러 가지 과학적인 기법을 도입했네요.



전교당은 강당인 대청과 거실인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선조가 이름을 내린 현판 글씨는 명필인 석봉 한호가 쓴 글씨라고 합니다. 전면 좌우에는 숙소로 사용하던 동재인 박약재와 서재인 홍의재가 있습니다.



도산서원은 서당, 서원, 기숙사 같은 메인 건물은 오른쪽에 노비의 숙소나 음식을 준비하는 부엌 같은 부속 건물은 왼쪽에 배치 해 놓았고 그 사이를 담을 쌓아 파티션을 나누고 작은 대문을 설치해 놓았네요.



작은 문은 지나 부속 건물로 들어섭니다. 상고직사는 서원을 관리하는 노비들의 숙소와 음식을 장만하는 부엌으로 사용한 건물입니다. 망원렌즈 화각이 좁아 스마트폰의 파노라마 기능을 이용해 찍었는데 전체가 한눈에 다 들어오니 더할 수 없이 좋네요.



시골집 창고에도 저것과 똑같이 생긴 가마솥이 있는데 갑자기 생산연도가 궁금해지는군요.



농운정사와 하고직사 뒤편입니다. 스마트폰 파노라마 기능이 이럴 때 쓰라고 만든 거였네요.



도산서원은 1969년부터 정부의 고적보존정책에 따라 대대적으로 보수했습니다. 이 사업의 일환로 건립된 옥진각은 퇴계의 유물 전시관으로 1970년 완공되었습니다. 이미 수십 번 둘러봤으므로 패스합니다.



역락재는 도산서원의 부속건물로 서원과 조금 떨어진 왼쪽에 위치하며 서당의 제자들을 위한 기숙사입니다.



도산서원 관람 후 도산서원에서 4km 거리에 있는 퇴계의 13대 후손인 이육사 문학관에 들렀습니다.


본명이 이원록인 선생은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을 때 미결수 번호가 264여서 이후 육사라는 호를 사용합니다. 선생은 시작(詩作) 활동 못지않게 독립투쟁에 헌신하였고 그 때문에 17번이나 옥고를 치르는 고난 한 삶을 살으셨습니다.


선생은 최남선, 모윤숙, 이효석, 이광수 같은 비굴한 지식인이 일제의 침략을 미화하고 나팔수 노릇을 할 때, 양심 있는 지식인이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준 실천 문학인입니다.



관람료 2,000원 내고 들어서자 반갑게 맞아주시는 선생께 공손히 인사를 드리고 선생의 유작인 "광야"를 경건한 마음으로 낭독합니다.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안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1층에는 세 개의 전시실이 있는데 제1전시실은 선생의 생애를 제2전시실은 선생의 문학 세계를 제3전시실은 선생의 독립운동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으며 2층은 기획전시실과 영상실, 선생의 작품을 탁본해 볼 수 있는 체험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층 영상실에서는 선생의 생애를 담은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어 문학관을 찾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영상실 창 너머 선생의 고향인 원천리 내살미 너른 평야가 가을을 맞아 황금빛으로 변한 논과 단무지 무밭의 녹색이 어우러지면서 가을 색감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낯선 만주 땅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 생과 사를 넘나들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 놓아 광야를 부르짖고 내 고장 칠월의 청포도를 노래했던 선생은 끝내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1월 7일 먼 이국땅 북경 감옥에서 마흔 살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역사를 배우고 과거를 돌아보는 이유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임진왜란을 겪었으면서 또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스스로 독립하지 못하고 해방을 맞았습니다. 일제강점기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서로가 마주 보며 총을 겨누는 가슴 아픈 현실도 생기지 않았겠지요.

수능을 보지 않는다는 이유로 역사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으며 일부 역사 교과서는 역사를 왜곡하고 일본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부정하고 있으니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숙연한 마음을 뒤로하고 체력단련과 역사 공부를 함께 한 2013년 뜻깊은 가을 야유회를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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