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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백천계곡의 단풍

by 변기환 2015. 10. 18.

오전에 근처 청옥산 임도 라이딩을 마치고 청옥산에서 5km 거리에 위치한 백천계곡을 찾았습니다.

입구를 들어서자 미지의 세계에 온 듯 형형색색 칠을 한 풍광이 나를 반깁니다. 매년 단풍시즌에 이곳을 찾지만, 늘 때를 지나쳤거나 너무 일러 많이 아쉬웠는데 오늘은 왠지 절정을 맞춰 온 것 같다는 짜릿한 느낌이 전두엽을 스치네요.

청송, 영양과 함께 우리나라 최고 오지로 손꼽히는 봉화에서 차로 40분을 달려야 만날 수 있는 백천계곡, 문명과 단절된 듯 철저하게 고립된 곳이지만 단풍 시기엔 어떻게 알았는지 찾는 이가 많습니다.

열목어 서식지로 유명한 백천계곡은 석포면 대현리에서 현불사를 지나 태백산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계곡입니다. 태백산에서 쏟아져 백천계곡으로 흐르는 계곡 물은 사시사철 수량이 풍부하고 수십 년간 사람의 접근을 막아서 자연환경이 잘 보존된 곳입니다.

오전에 2시간 임도 라이딩으로 파김치가 되기 일보 직전이지만, 울긋불긋 색동저고리를 입은 경치를 보니 퇴계 이황 선생께서 문경시 선유동계곡에 9곡의 이름을 지어 바위에 새긴 것처럼 나도 뭔가 멋진 쌈박한 구절을 바위에 새기고 싶어집니다.

아~ 단풍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내 마음의 감수성에도 첫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 어느 작은 산골 소년의 베갯잇처럼 알록달록 단풍이 물듭니다.

유부남 청마 유치환 선생은 미망인 이영도를 만나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지만, 나는 단풍을 만나 행복합니다.

내 차에는 수년째 사용 한 적없는 루어 낚싯대와 플라이 낚싯대가 실려 있는데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주인공 노만처럼 멋진 모습으로 플라이 낚싯대를 휘두르고 싶어집니다.

전국이 계속된 가뭄에 타들어 가는데 백천계곡의 수량은 늘 일정하네요.

아~ 이 좋은 계절, 이 좋은 경치, 손끝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과 가슴에 스며드는 따듯한 햇살... 그리고 마음까지 물드는 단풍과 고즈넉함...

계곡이 깊을수록 단풍은 더 짙어지고...

여기저기서 불러대는 속삭임에 발걸음은 느려집니다.

10월의 하늘 아래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네요.

주렁주렁 달린 근심이 사라졌으면...

단풍처럼 화사 했으면...

늘 처음처럼 순수했으면...

내가 몇 년 전 이름을 지어준 매롱바위도 여전히 잘 있는 걸 확인 했습니다.

내가 아는 여자의 마음은 절대 갈대처럼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내 인생에서 이처럼 화려했던 적이 있었는지...

단풍처럼 화려했던 적이 있었는지...

살아 있다는 것이 심장이 뛰고 허파가 숨을 들이켜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냉철한 이성보다는 때론 감성에 빠져 조금 느슨하고 느리게 자연이 꾸며 놓은 감성에 젖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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