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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관광버스 여행

by 변기환 2015. 11. 28.

내가 극도로 싫어하고 혐오하는 여행이 바로 관광버스 여행입니다. 흔히 관광버스 여행이라 하면 나이가 든 어르신이 일단 소주를 박스 채 까 붓고 뽕짝 리듬에 취해 말도 안 되는 춤을 버스가 출렁 걸릴 정도로 뛰는 그리하여 목적이 여행인지 춤판인지 술판인지 모를 정체불명의 여행을 말합니다.

어쨌든 오늘 내가 그토록 싫어하고 혐오하는 관광버스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친한 친구들과 20년 가까이 이어온 모임에서 정기적으로 떠나는 가을 여행인데 다행히 다들 점잖은 친구들이라 내가 정의한 관광버스 여행의 불편한 편견을 깨고 알차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여행지는 삼척으로 정했다가 스카이 통통처럼 마구 뛰는 25인승 버스로 삼척까지 갔다가는 다들 멀미에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 같아 급히 가까운 울진으로 행선지를 수정했습니다.

통고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국도변 휴게소에서 가볍게 한잔하기로 했으나 한겨울보다 더 매서운 칼바람에 화들짝 놀라 사진만 찍고 급히 탑승...

며칠 내린 비로 불영계곡 물줄기가 다시 굵어졌습니다.

내 성격처럼 까칠한 불영계곡의 날카로운 바위들...

목적지에 도착했으나 점심시간이 일러 잠시 바다를 보러 나왔습니다.

바람은 잠잠한데 파도는 뭣 때문에 화가 났는지 다 집어삼킬 듯 어마무시하게 들이치네요.

내 평생 이렇게 높은 파도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듯...

역동적으로 몰아치는 파도에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이고 바위에 부딪힌 물살이 포말이 되어 안개처럼 휘날릴 때마다 심장이 두근두근합니다.

삼척 포기하고 여기 오길 잘했네요.

후배의 친구가 하는 횟집을 예약했더니 도착과 동시에 회를 내 오네요. 메뉴는 전에 후포항에서 먹었던 오징어, 쥐치, 우럭회... 이맘때 울진의 회는 정해져 있는 듯...

회를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바닷가에서 먹으니 그런대로 꼬시네요.

홍게 등장과 동시에 꼬신 회 접시는 한쪽으로 살포시 밀려나고...

마리당 2만 원짜리를 주문했는데 크기가 상당합니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뭔가 눈치를 챈 주인이 잽싸게 현란한 가위질로 게살을 발라 주는데 저... 파... 파워 블... 블로거 아닙니다. ㅠㅠ

아직 살이 덜 여물었네요.

게살을 발라먹고 나면 게딱지에 밥을 비벼 주는데 묵은 쌀로 밥을 지었는지 아니면 잔반을 뎁혀 비볐는지 니 맛 내 맛도 없습니다.

우럭 매운탕도 못 먹을 정도로 맹숭맹숭하고... 너무 졸아 물을 탄듯합니다. 우럭 매운탕은 발로 대충 끓여도 맛있는데...

그래 다음에 또 보자...

바닷가 풍경은 언제나 활기가 넘치고 때론 거칠지만, 그 안에 진한 삶의 활력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애매하고 섭섭한 점심을 먹은 후 근처 월송정을 올랐습니다. 월송정은 관동팔경의 하나로 현판은 최규하 전 대통령의 휘호라고 합니다.

월송정에서 내려다 본 풍경...

울진 비행장에서 이룩한 경비행기가 축하 비행을 왔네요. 울진군 기성면에 있는 울진 비행장은 원래 국내 공항으로 건설되어 2003년에 개항할 예정이었지만, 수요가 없어 포기하고 2010년 비행교육 훈련센터로 활용중입니다.

아~ 여전히 파도는 높고...

덩달아 가슴은 두근거리고...

그런 내 설렘을 아는지 하늘엔 경비행기가 쉴 새 없이 축하 비행을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불영사에 들렀습니다.

불영사를 왔던 게 10년 전인지 20년 전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데 예전보다 규모가 훨씬 커졌네요.

내가 마지막 불영사에 왔을 때 법영류 앞 불영지(인공호수)에 아름드리 통나무로 꽉 찼었는데...

그 통나무로 새 도량을 세웠나 봅니다. 법정 스님은 "종교인의 뜨거운 신앙은 내면으로 심화 돼야지 겉으로 요란하게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하셨으며, "진정한 도량은 눈에 보이는 건물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종교인은 이 말씀을 깊이 새겨듣고 행동으로 옮겼으면 좋겠습니다.

불영사는 불국사의 말사며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데 연못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친다 하여 불영사라고 합니다.

다시 한 시간을 달려 저녁 시간에 맞춰 고향 춘양면에 도착했습니다. 술을 좋아하지만, 낮술은 절대 먹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고 이제 저녁이 되었으니 고향 막걸리 한 병을 주문했습니다.

뭔가 20% 부족한 태백산 막걸리... 물은 너무 많이 탄 듯...

가을배추가 얼찌나 달달한지 다른 반찬이 필요 없네요.

극도로 혐오하고 싫어했던 관광버스 여행도 좋은 벗과 함께하니 나름 재미도 있고 추억도 소복이 쌓였습니다. 가을의 끝자락에 좋은 벗과 떠난 푸근한 여행... 그 기억은 마흔여덟의 책갈피에 고이 간직하고 내년 더 나은 여행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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