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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Talk

죽은 놈 살리기

by 변기환 2013. 6. 28.

타고 다니는 차가 2002년식이니 횟수로 12년이 되었습니다. 차는 사고 싶은데 집사람이 허락하지 않아 몇 달을 무진장 졸랐습니다.


아이가 울 때도 집사람 앞에서 "사내가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울면 고추 떨어진다. 남자는 평생 딱 3번 눈물을 흘려야 한다. 태어날 때,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마누라가 차 안 사줄 때다."라며 말도 안 되는 교육을 시켰습니다. 얼마나 세뇌를 당했는지 당시 5살이었던 아이가 고2가 된 지금도 기억하더군요.


그동안 등산 다닌다고 일부러 험한 길을 골라 다녀도 말썽 없이 잘 굴러다녔는데, 이젠 년 식이 오래되다 보니 늙은 티를 내고 이곳저곳 안 아픈 곳이 없네요.


시계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데, 시도 때도 없이 시간이 바뀝니다. 이놈의 시계 때문에 약속시간 맞춰 천천히 운전하다가 시계 보고 깜짝 놀라 풀 악셀을 밟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공조기 표시창은 보시다시피 제멋대로입니다. 수시로 꺼졌다 켜지기를 계속 반복하니 야간운전할 때 몹시 거슬립니다. 에어컨 작동 표시등도 들어오지 않아 에어컨을 켰는지 껐는지 송풍구에 손을 대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오디오는 언제 돌아가셨는지 모르게 가셨습니다. 아주 가셨으면 미련없이 포기하겠는데, 이 놈이 배터리 단자를 1분 정도 분리했다 다시 연결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하다가 며칠 후 또 안 됩니다.


한동안 그렇게 불편하게 사용했는데 매번 배터리 단자 분리하고 연결하는 게 귀찮아 방치한 지 몇 달 됐습니다.



몇 번이나 새 차를 살까 고민하다가 이제껏 사고 한번 없이 주인을 모셔온 듬직함이 기특해 - 이전엔 타던 세피아, 스포티지는 동네북이었습니다 - 직접 수리하기로 하고 관련 부품을 알아보니, 새 부품은 구할 수 없고 인터넷엔 중고 부품도 꽤 비싸게 팔더군요. 그래서 인맥을 동원 인근 폐차장을 죄다 수배해 필요한 부품을 샀습니다. 싸게 준 것도 고마운데 배달까지 해 주시네요.



분해합니다. 공구는 십자드라이버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먼저 공조기를 탈거합니다.


체인지 레버가 특히 하지요? 그렇습니다. 수동입니다. 수동 기어에 상시 사륜 옵션을 넣은 당시 몇 대 출고 되지 않은 귀한 쏘렌토입니다.


차 막힐 땐 왼쪽 발목과 무릎이 뻐근하긴 하지만, 거친 길을 달려야 하는 RV의 특성상 여성스럽고 얌전한 오토보다는 야생 느낌이 팍팍 나는 남자다운 수동이 제격이지요. 하면서 당시 오토 옵션이 200만 원이었습니다. 라는 말은 왜 하나 모르겠네요.



잘 동작하는군요. 근데 요놈이 버튼을 누를 때 마다 삑삑 하고 듣기 좋은 소리가 나는 데 고장인지 조용합니다.



중고 공조기 전면이 지저분하고 흠집이 많아 껍데기는 원래 거를 사용하기로 하고 고장 난 부품을 이식하기 위해 환자를 간이 수술대에 눕히고 화타가 방덕의 독화살에 맞은 관우의 뼈를 긁어내듯 조심스럽게 장기 이식수술을 집도합니다. 매우 정밀한 수술인데도 십자드라이버 하나로 모든 시술이 가능하군요.



잘 되는 거 확인하고 원래 위치에 장착합니다.



오디오도 지저분 하긴 하지만 구운 시디 잘 읽고 라디오도 잘 나오는 게 이상이 없군요.



조립은 분해의 역순... 깔끔하게 조립했습니다. 시간 나면 때 빼고 광내야겠네요.


이젠 시간 확인하기 위해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 꺼낼 일 없고 밤에 번쩍거리는 공조기 보지 않아 좋고 먼 길 노래 들어가며 운전할 수 있으니 갑자기 야간 장거리를 뛰고 싶네요.


여보게 아픈 곳 잘 치료했으니 아프지 말고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도록 오래오래 백년해로하세. 근데 모하비 풀 옵션이 얼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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