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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Talk

내 고향

by 변기환 2013. 8. 8.

모처럼 일부러 시간 내서 고향 집에 왔습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살면서도 왜 이렇게 발걸음 하기가 어려운지... 올 때마다 자주 와 봐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늘 마음뿐입니다.


마당에 심어 놓은 잔디 사이로 토끼풀, 질경이, 민들래 같은 생명력 질긴 잡초가 무성합니다. 동생 삼 부자가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뽑아 대지만, 죽 떠 먹은 자리처럼 티도 안 나네요.



5,000여 평 과수원엔 부모님께서 정성스럽게 키운 과일들이 뜨거운 햇살 아래 탐스럽게 익어갑니다.


35년 전,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 조차할 수 없었던 천수답을 아버지는 기계 힘을 빌리지 않고 삽과 곡괭이로 둑을 허물고 메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고소득 작물인 배, 포도, 자두, 복숭아, 사과나무를 심으셨습니다.


일흔이 넘으신 아버지께서 경작 하시기에는 무리니 조금 줄이라고 해도 늘 말씀만 "그러마" 하십니다. 올해도 태풍 피해 없이 풍년이 들기를 기대해 봅니다.



어젯밤 이장이 멧돼지 새끼 두 마리를 잡았다고 하더니 여기저기 엽총 탄피가 흩어져 있네요.



이 사과나무가 수령이 35년은 넘었을 겁니다. 이젠 나이가 많아 늙은 몸을 가누지 못해 쳐진 가지 여기저기를 받쳐야 합니다.



요놈들은 심은 지 10년 미만 된 어린 나무입니다. 여름에 수확하는 아오리를 심었다가 돈 안 된다고 뽑아 버리고 신품종을 심었습니다.


재래종은 심은 지 10년은 넘어야 열매를 맺고 높은 사다리를 놓아도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있을 정도로 키가 커 나무를 타고 올라야 할 경우도 있지 만, 신품종은 3~4년이면 수확할 수 있고 나즈막해 사다리 없이 딸 수 있습니다.


식물도 원하는 대로 만들어 내는 인간의 유전자 변형 기술은 귀찮은 일, 힘든 일 대신 해주는 또 다른 나를 만들 날도 멀지 않았겠습니다.



자투리 땅 놀리는 게 아까워 수수도 심으셨고...



육개장이나 닭개장에 빠지면 섭섭한 토란도 무럭무럭 잘 자라는군요.



콩밭인지 풀밭인지... 굴러온 돌이 주인 행세를 하네요.



옥수수 수염이 말라가는 걸 보니 꺾을 때가 됐습니다.



내가 농사일 자체를 싫어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싫은 일이 땡볕에 쭈그리고 앉아 고추 따는 겁니다. 사실 고추는 남자가 따는 게 아니죠.



향긋한 들깻잎을 보니 삼겹살 생각이 간절합니다. 오늘 저녁은 깻잎 몇 장 뜯어 삼겹살 구워 먹어야겠네요.



밭 언저리엔 청설모가 주인인 밤이 듬성듬성 달렸네요.



도지를 준 사촌 형님네 삼포 밭은 삼을 심은 지 올해가 6년째니 가을엔 리얼 6년근 인삼을 수확하겠네요.



인삼 열매가 보기에는 참 먹음직스럽게 생겼습니다. 이놈이 인삼보다 더 효능이 좋다고 "진생베리"라 부른답니다. 요거 따다가 술 담그고 싶지만, 농약인지 영양제인지 열흘에 한 번꼴로 쳐대는 걸 보고는 마음 접었습니다.



멧돼지가 밭 여기저기를 갈아엎어 놓았네요. 키가 닿는 곳에 달린 사과는 다 따먹고, 키가 닿지 않는 어린 나무는 쓰러트리거나 부러트려 못쓰게 합니다.


멧돼지가 하룻밤 사이에 뒤집어 놓은 현장을 보면 짐승이 그랬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완전 초토화 시켜버립니다. 


국토의 70%가 산악지역이라지만 대부분 농경지가 산과 접하고 있어 짐승의 먹이활동 영역과 겹치는지라 이 숙명적인 대결은 인간이 물러서거나 멧돼지가 멸종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계속 되겠지요.



피해가 심하니 전기 울타리를 치셨네요. 몇 년 전 인근 지역에서 전기 울타리에 220V를 흘려보내 고등학생이 감전사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원래 목적이 죽이는 게 아니라 놀래켜서 다시는 못오게 하는겁니다. 산돼지 놈들이 깜짝 놀라서 도망가는 걸 상상하니 괜히 우습네요.



바빠서 미처 못 딴 자두가 너무 익어버렸네요.



그중 덜 익은 걸 몇 개 따서... 하나 먹어 볼까요? 옷에 쓱쓱 닦아...



아~~~ 달고... 시고... 정신이 번쩍 드네요. 더위에 잃었던 입맛을 다시 찾았습니다.



오늘 날씨... 이글거리는 태양이 지글지글 굽네요.



땡볕에 앉아 감자 9박스 캐고 나니 핑 돕니다.



예전 같으면 밤톨만 한 것도 알뜰히 주워 담았을 걸 올해는 감자 값이 X값이라 계란보다 작은 놈들은 다 버립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농산물은 생산자의 노력과 노동력에 비해 너무 싸다는 생각입니다. 100만 원이 훌쩍 넘는 가방은 비싼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저 없이 사면서 과일이나 채소는 조금만 올라도 비싸다고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네요.


휴일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 땡볕에서 고생하는 농부의 노력과 노동력이 하루 8시간, 주5일 쾌적한 환경에서 가방 만드는 근로자의 노동력보다 가치가 없다는 건가요?



이거 모르면 간첩이죠. 누가 발명했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무릎보호에 일조한 공로가 매우 크므로 노벨 의학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땀을 한 말 흘리고 점심 먹으러 집에 왔습니다. 집 앞 너른 뜰엔 정신 나간 놈이 발상한 삽질이 한창입니다. 저길 파내서 집중 호우가 내리면 개울물을 가둬 단군이래 한 번도 홍수 피해를 본 적이 없는 아랫동네 범람을 예방 한답니다. 내가 꼬박꼬박 내는 세금이 쓸데없이 쓰이는 현장을 보니 갑자기 혈압이 오르고 뒷골이 뻐근해지네요.



집 앞에 있는 유기농 창고입니다.



땡볕에 축~~~ 늘어진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오늘이 올 들어 가장 덥다는 36도 이 더위에 일하다가는 열사병 걸릴 수 있으니, 오후엔 집에서 쉬시라고 신신당부하고 오늘 캔 감자 한 봉다리 싣고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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