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mall Talk

자연산 추어탕

by 변기환 2013. 10. 15.

며칠 전 동네 고깃집에 저녁 먹으러 갔다가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아저씨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넉넉잡아 한 시간이면 자연산 미꾸라지를 한 양동이 잡을 수 있고 산 더덕을 50뿌리는 캘 수 있다길래 이 양반이 보기보다 뻥이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언제 시간이 되면 같이 가자는 걸 건성으로 그럽시다 했더니 일요일 오전에 전화가 왔네요. 먼저 미꾸라지부터 검증 들어갑니다.


아~~~ 햇볕 따가운 황금빛 들판에 풍요로움이 넘실거리고 고개 숙인 논밭의 열매 노랗게 익어 가는 가을이군요.



미꾸라지는 커녕 개구리도 살 것 같지 않은 콘크리트 농수로에 미꾸라지가 바글바글한답니다.



논을 거친 물이 아니라 맑은 내성천 물이 바로 유입되는 지점이라 잔류농약 걱정도 없고 물살이 무척 빠르며 깨끗합니다.



어릴 적 동네 형들과 물고기 잡으러 갈 때면 고기 못 잡는 나는 항상 양동이만 들고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철없을 땐 물고기 잡으러 가는 게 마냥 설레고 좋았는데 마흔 중반을 넘은 나이에 태평스럽게 양동이를 든 모습을 보니 왠지 기분이 멜랑꼴리해지네요.



말짱 다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오 분 만에 한 그릇은 잡았습니다. 이 양반이 가끔 TV에서나 보는 어신(魚神)쯤 되는군요.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친근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옵니다. 직접 만든 족대를 대고 농수로를 훑으니 한 번에 보통 대여섯 마리씩 잡힙니다.



씨알은 제법 굵직한데 미끌거리는 느낌은 정말 별로네요.



이놈이 올챙이인 줄 알았는데 메기 치어랍니다. 메기뿐만 아니라 민물새우, 올챙이, 개구리, 토종 논 골뱅이, 물방개, 유충 같은 것들이 수두룩합니다. 콘크리트 농수로에 이렇게 건강하고 다양한 수중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게 보고도 믿기지 않습니다. 민물새우가 사는 걸 보니 수질은 1급수 이상입니다.



부지깽이도 덤벙인다는 가을... 벼 베기 하는 옆에서 고기 잡는 게 자꾸 눈치가 보이는데 벼는 어쩌나 공손히 인사를 해대는지...



뒤통수 뜨끔뜨끔 한 걸 참으며 30분 동안 농수로 100m를 훑었는데 반 양동이 정도 잡았습니다. 깨끗한 물에 사는 미꾸라지는 오랫동안 해감을 할 필요가 없답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미꾸라지 잡으러 동네 논 다 헤집고 다녀봤자 미꾸라지는 한 종지도 못 잡고 종일 논매다 온 것처럼 옷이며 신발이며 진흙투성이가 돼서 돌아오곤 했는데 신에 흙 하나 묻히지 않고 자연산 미꾸라지를 이렇게 많이 잡을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저녁 무렵 오늘 잡은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끓여 놨다는 전화를 받고 집사람과 아이를 앞세워 고깃집을 찾았습니다. 토란대, 고사리, 대파, 우거지를 넣고 슴슴하게 끓였네요. 초피가루나 들깨가루를 넣지 않아도 추어탕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나지 않고 국물이 깔끔 담백한 게 이제 파는 추어탕은 거저 줘도 못 먹겠습니다.

 

추어탕집 75%가 중국산 미꾸라지를 사용한답니다. 일부는 미꾸라지 분말을 사용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고등어나 잡어를 갈아 쓰기도 한다는데 리얼 100% 자연산 추어탕은 시중에 파는 추어탕과는 모든 면에서 확실히 비교가 되는군요.

미꾸라지는 검증했으니 다음 주 일요일 한 시간에 산 더덕 50뿌리 캐기 검증 들어갑니다.

'Small Talk'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향은 여전히 삽질 중  (10) 2013.11.18
역시 자연산  (7) 2013.11.05
송이버섯  (9) 2013.09.28
내 고향  (8) 2013.08.08
LED 캠핑등 LB-50  (9) 2013.07.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