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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Talk

송이버섯

by 변기환 2013. 9. 28.

올해는 유난히 더운 날씨 때문인지 송이가 나지 않는답니다. 송이는 여름 내내 적당량 비가 와야 하고 9월이 시작되면 꽤 많은 비가 내린 후 햇볕이 따가워야 하는데, 비다운 비 한 번 내린 적이 없고 태풍 한 번 분 적 없는 올해 날씨는 송이가 자라는 데는 최악이었습니다.


축제를 할 만큼 송이가 나지 않는데 봉화군은 축제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송이 축제 기간 팔리는 송이버섯 대부분이 봉화산이 아니라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비밀입니다. 매년 봉화 송이 축제 기간에 팔린 양이 전체 채취량 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송이 생산량이 극히 적어 축제를 앞둔 봉화와 울진군에 비상이 걸렸다. 송이 없는 송이 축제가 될 판이다. 29일부터 전국적인 비 소식이 있지만, 양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여 이번 주말에 축제를 여는 봉화군은 물론 내달 초에 열 예정인 울진군도 축제에 필요한 송이 확보가 어려울 전망이다.

산림조합중앙회에 따르면 올 들어 25일까지 송이 공판량은 전국적으로 3,259㎏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1,415㎏의 3% 정도로 송이가 아예 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특히 지난해 같은 기간 4,199㎏의 봉화는 183㎏으로 4.3%, 울진은 5,120㎏에서 44.㎏으로 0.9%에 지나지 않는다. 국내 최대 송이 생산지인 영덕은 지난해 9월 25일까지 40,296㎏을 공판했으나 올해는 공판 시작일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9월 25일 하루 공판량은 지난해는 봉화 428.8㎏, 울진 622.2㎏, 영덕은 무려 4,529㎏에 달했지만, 올해는 봉화 100㎏, 울진 28㎏뿐이다.



작년엔 개도 송이를 물고 다녔을 정도로 흔했는데... 하긴 매년 풍년이어서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다면 지금처럼 귀한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겠죠.



내가 어렸을 적엔 송이가 지금처럼 비싸지도 귀하지도 않았습니다. 송이가 많이 나던 해는 지게로 져 나를 정도였습니다. 송이뿐만 아니라 땅지, 능이, 굴뚝버섯, 싸리버섯 같은 요즘은 돈을 주고도 못 구하는 귀한 버섯도 흔했습니다.


그렇게 줄기차게 나던 송이도 산판을 한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지구온난화 탓을 하시는데, 나는 나무를 베기 위해 사용한 기계톱 톱날 윤활을 위해 뿌린 윤활유 때문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며칠 전 친구가 송이를 사놨다고 연락을 해 왔습니다. 등외품인 5등급 1kg 가격이 무려 25만 원이랍니다. 퇴근 시간을 손꼽아 기다려 춘양으로 쏜살같이 달려갑니다.



송이 먹을 욕심에 점심밥을 덜어낼 정도로 잔뜩 기대를 했는데, 날씨 탓에 벌레가 먹고 줄기가 썩어 먹을 게 별로 없습니다. 송이 벌레와 복숭아 벌레는 먹으면 약이 된다는데, 그건 못 살고 못 먹을 때나 하는 소리고...



더러 실한 놈도 있었지만, 줄기를 쪼개보면 어김없이 벌레가 먹어 가운데가 텅 비어 있습니다. 몇 년 전 벌레가 심하게 먹은 송이를 쇠고기와 함께 석쇠에 구웠는데 쌀알 같은 벌레가 송이 양만큼 기어 나와 기겁을 했던 트라우마 때문에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입만 다시고 와 아쉬웠던 차에 이번에는 춘양에서 송이 판매를 하는 후배가 송이를 준비했답니다.



기특하게도 먹기 좋게 미리 손질해서 잘게 썰어왔네요. 5등급 1kg, 오늘 공판가격이 22만 원... ㅎㄷㄷ...



송이 요리는 멸치와 다시마, 양파를 끓인 육수에 송이와 쇠고기를 살짝 데쳐 굵은 소금을 뿌린 들기름에 찍어 먹어야 맛있는데, 얻어먹는 주제에 입맛대로 먹자고 했다간 씹던 송이도 뺏어갈까 봐, 조금 짠 듯 하지만 해주는 대로 먹어야죠.



벌레가 먹지 않고 갓이 퍼지지 않는 작은 것으로만 골라선지 송진 냄새 같기도 하고 솔잎 타는 냄새 같기도 한 특유의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게 리얼 봉화 춘양 송이가 맞습니다.



아~~~ 드디어 송이 다운 송이를 먹어보네요. 어릴 때 도시락 반찬으로 고추장에 묻어둔 송이 고추장 장아찌를 싸주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은 삼시세끼 한 달 내내 먹어도 질리지 않고 행복할 듯합니다.


인간이 지닌 감각 중에 후각이 가장 먼저 둔해진다는 생물학적 사실이 말짱 다 거짓말이었네요.



아껴 먹느라 남은 송이를 몽땅 때려 넣고 보니 고기보다 송이가 더 많습니다. 밥상머리에서 행복을 느끼는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평소에는 공짜로 줘도 안 먹을 춘양 태백산 막걸리가 어찌나 유혹을 해 대는지 몇 번이나 차 키를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 눌러 참았습니다.

올해 송이버섯 시작과 동시에 시즌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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