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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통고산 자연 휴양림

by 변기환 2013. 7. 30.

한 달 전 어렵게 예약한 통고산 자연 휴양림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춘양면 방전 삼거리에서 사촌 형네를 만나 통고산 자연 휴양림으로 달립니다.

밤에는 다니는 차가 거의 없어 적막하다 못해 운전하기가 무서울 정도로 한산한데도 왕복 2차선 새 도로를 놓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환경파괴를 최소화하기 위해 터널을 뚫고 애초 왕복 4차선으로 계획했던 노선을 2차선으로 변경 길폭도 많이 줄여 시공한다고는 하나 자연경관이 끝내주는 산속 깊은 곳에 세워지는 거대한 인공구조물을 볼 때마다 어리석은 인간이 하늘에 닿으려고 쌓았다는 바벨탑의 전설이 생각납니다.

옥방 휴게소를 지나 구불구불한 답운재를 힘겹게 오르고 멀미 나는 고바이를 돌고 돌아 통고산 자연 휴양림에 도착했습니다.

체크인하고 2박 3일 아이 핑계로 어른만 신나는 일정을 시작합니다. 선선한 게 공기부터가 다르네요.

예약해둔 2 야영장에 들어서니 민물고기 잡기 체험행사가 막 시작됐습니다. 제시간에 도착하려고 열심히 밟아왔는데 좀 늦었습니다.

겨우 5분 늦었는데 벌써 파장 분위기입니다. 민물고기 잡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두 곳인데 여긴 씨알은 굵지만, 맨손으로 잡아야 한다니 패쓰...

이곳엔 아이들이 반두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많이 잡을 확률이 높으니 유치원, 초딩, 중딩, 고딩 아이를 앞세워 구석진 곳을 집중적으로 공략할 겁니다. 사진 오른쪽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있는 분이 예전 봉화 예비군 중대장을 하셨는데 지금은 숲 해설가로 행복한 인생 2막을 즐기고 계십니다.

대충 차 세워 놓고 잽싸게 뛰어들어 1타 3피, 1타 4피 신공으로 순식간에 몇 마리 쓸어 담습니다. 별다른 놀잇거리가 없던 어릴 시절 여름이면 하던 놀이가 고기 잡는 거였으니 물 반 고기 반인 얕은 물에서 반두로 고기 잡는 건 누워 식은 죽 먹기입니다.

반두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을 땐 절대 가운데를 공략해서는 안 됩니다. 네 귀퉁이 중 한 곳에 반두를 대 놓고 있으면 초보들이 미친년 널 뛰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고기를 몰아주니 그냥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전쟁 같았던 민물고기 잡기 체험 행사가 끝나자 언제 그랬냐 싶게 개울은 평온하고 조용합니다.

사촌 형은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리고 여기저기를 쑤셔 대는군요.

얼핏 봐도 스무 마리 이상 잡은 것 같습니다.

한바탕 난리를 치른 후 예약해둔 데크를 찾아 짐을 풉니다.

일부러 큰 데크를 예약했는데 텐트 크기와 딱 맞아 떨어지는군요.

이 짐들을 트렁크에 실어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네요. 양으로 봐서는 1톤 화물차도 부족할 것 같습니다. 짐 풀고 텐트치고 나니 선수들이 속속 도착합니다.

잡은 물고기 손질을 합니다. 씨알이 제법 굵직한 산천어군요. 옆 텐트 몇 마리 나눠 주고 깨끗하게 손질해서...

50년 동안 안동 간고등어 간잽이를 했다는 이동상 명인이 고등어에 소금 치는 건 못 봤지만, 그 정성으로 소금 간 해서...

호일에 돌돌 말아 숯불에 구우면...

~ 고소하고 야들야들한 게 이놈이 술, 밥 다 훔쳐가는 밥상 도둑이네요.

1인당 세 마리만 잡을 수 있다고 했는데 뒤늦게 뛰어들어 많이도 잡았습니다.

회도 항개도 안 비린 게 완전 쫄깃하네요. 몇 년 전 아는 형이 작살로 30cm가 넘는 산천어를 잡아 회 떠 먹은 적이 있는데 살이 흐물흐물해서 느낌이 별로였는데 산 놈을 바로 회 뜨니 꼬들꼬들한 송어 회 못지않네요.

산천어의 재발견

캠핑와서 삼겹살 안 먹으면 속없는 만두 먹은 것처럼 섭섭하고 서운합니다.

각자 취향대로 맥주, 와인, 막걸리를 곁들여 이런저런 유쾌한 이야기를 나누며

내일 아침엔 어떨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들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며칠 전 친구가 써 보라며 보내준 캠핑 등이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총 5단계 중 3단계 만 켜도 충분히 밝아 4일은 거뜬히 쓰겠습니다.

폭풍 같은 밤이 지나고 머리 아프고 속 쓰린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에 시원한 장맛비가 한줄기 지나갑니다.

얼큰하고 칼칼한 김치찌개 끓여 쓰린 속 달래고...

해장으로 1.5km 자연 관찰로를 걸어봅니다.

30분 나지막한 산자락을 걷는 자연 관찰로는 경사가 완만하고 곳곳에 자연을 눈여겨볼 수 있는 아이템을 배치해 아이와 손잡고 산책 겸 운동 겸 둘러보면 좋습니다.

전망대에서 구름인지 안갠지 자욱한 골짜기를 내려다보니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 가사처럼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와 캠핑장 여기저기를 둘러봅니다. 2 야영장과 머루와 다래 오두막 사이에 놓인 흔들다리를 흔들거리며 건너보고...

주위를 둘러보니 잠자리가 나리꽃에 앉아 젖은 날개를 말리고 있습니다.

어제 민물고기 잡기 체험행사로 한바탕 난리 블루스를 쳤던 개울이 아침부터 성급한 아이들 물놀이장으로 변했습니다. 이런 개울에 잠시 놀고 나면 입술이 파랗게 질리고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 달달달 떨리는데 계곡이 길어 개울물이 흘러 오는 동안 알맞게 데워져 그런지 그렇게 차지 않네요.

일상이 바쁜 선수들 보내고 사촌 형과 오두막으로 짐 옮기고 텐트를 걷어 바로 옆 3 야영장에 쳐 놓고...

잊고 있었던 세상이 궁금해 스마트폰으로 문명 세계에 접속해봅니다.

지금 이 순간 여기가 무릉도원이고 샹그릴라며 늘 꿈꿔왔던 마음속 유토피아입니다.

미리 만들어 간 양념으로 매콤한 닭볶음 만들어 저녁을 먹고 닭꼬치와 닭 날개를 구워 어젯밤 수준으로 체내 알콜 도수를 올려줍니다.

늘어가는 술병 만큼 마음은 넓어지고 사랑은 깊어집니다. 행복이란 게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 있었네요.

다음날 새벽 5.1채널 돌비 디지탈 모드로 울어대는 매미와 양철지붕을 때리는 듯한 물소리에 잠이 깨

집사람과 휴양림 전체를 둘러봅니다. 평소 이 시간에 깨우면 도끼눈을 하고 쳐다보는데 오늘은 자기가 먼저 일어나 걷자고 합니다.

매표소를 지나 약 500m 지점 개울 건너 1 야영장이 있습니다.

1 야영장은 차가 들어갈 수 없으니 짐은 들고 날라야 하고 주차장이 없어 차를 도로 가에 세워둬야 합니다.

갑자기 뒷덜미가 쏴~해 돌아보니 새끼 뱀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도로를 가로질러 지나갑니다. 놔뒀다가는 로드킬 당할 것 같아 꼬챙이로 도로 멀리 집어 던져 놓고 곰곰이 생각하니 이놈이 커서 야영객에게 해코지할 걸 예방하는 차원에서 죽여 버릴 걸 하는 사악한 생각이 순간 살짝 드네요.

1 야영장에서 1km 거리에 있는 2층짜리 산림휴양관엔 10개의 객실이 있습니다. 산림휴양관 옆으로 야생화 화분 만들기 체험관과 2 야영장이 쭉~ 이어 있으며 개울 건너엔 오두막 두 동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가 2 야영장입니다. 화장실과 더운물 안 나오는 샤워장, 취사장 2곳이 있으며 족구장과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그릴이 준비된 야외 바베큐장이 있습니다. 우리는 운이 좋아 첫날 2 야영장 대형 데크 2개와 작은 데크 2개를 예약했고, 다음날은 4인용 오두막 하나와 3 야영장 데크 하나를 예약했습니다.

작은 오토바이를 타고 단촐한 여행을 하는 게 부럽다가 술 실을 공간이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불쌍해지네요.

2 야영장을 지나 200m 올라가면 왼쪽 언덕 위에 3 야영장이 있습니다. 야영장 아래에 차를 세워둘 수 있지만, 취사장과 샤워장이 없어 2 야영장까지 가서 이용해야 합니다. 화장실도 좀 머네요.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화장실입니다. 밤중에 화장실 가려면 뒤통수 좀 서늘하겠습니다.

통고산 자연 휴양림은 데크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 타프 칠 공간이 없는 곳이 많고 옆 텐트에서 코 고는 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입니다. 밤새 시끄럽게 떠들며 술 푸는 진상들 만나면 대략 난감할 듯합니다. 다행히 우리는 운이 좋아선지 이틀을 자면서 시끄럽게 하거나 눈살 찌푸리는 행동을 하는 야영객이 없어 편안하게 쉴 수 있었습니다.

야영장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고 돌아와 구수한 청국장 끓여 아침밥 든든히 먹고...

중무장해야만 오를 수 있다는 통고산을

쓰레빠에 물도 없이 오릅니다.

왕복 8km, 정상 부근까지 임도가 나 있어 1시간 50분이면 충분합니다.

휴양림 깊숙한 곳에 오래된 농기구 전시장과 전시물을 그냥 방치했네요. 이것도 국민 혈세로 만들었을 텐데 잘 관리해서 많은 야영객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했을면 얼마나 좋을까요.

발로 밟아 나락 터는 탈곡기를 참 오랜만에 보는군요. 저걸 밟으면 나락 터는 통이 돌아가면서 와랑~ 와랑~ 하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어릴 때 우리는 와랑기라 불렀습니다. 콩이나 나락 고를 때 쓰는 풍구대도 보이고 쌀 보관하는 뒤주도 보이네요.

대여섯 개나 되는 장승도 관리를 안 해서 다 쓰러졌습니다.

벌통에 벌이 들었나 싶어 한참을 지켜봐도 벌은 커녕 날벌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은 거의 볼 수 없는 귀하디귀한 야생 다래가 주렁주렁 열렸네요. 가을에 다시 와 봐야겠습니다.

산도라지 꽃도 참 오랜만에 보는군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주위를 살펴보니 어떤 분이 뭘 열심히 찍고 있습니다. 산에서 자라는 지의류를 관찰하는 산림청 직원이라네요.

어느새 다~ 올라왔네요.

한 시간 조금 더 걸렸습니다.

쓰레빠 인증... 맨발에 운동화를 신은 사촌 형은 발끝이 까졌다며 신발을 들고 올라왔습니다.

무인 산불감시 탑입니다. 사무실에 앉아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가며 산 정상의 영상을 무선으로 받아 볼 수 있으니 세상 참 좋아졌고 일자리는 줄었습니다.

날듯이 내려와 카레밥 해 먹고 따끈한 커피 한잔 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다 2박 3일 아쉬운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집니다.

모처럼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서 좋은 사람과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얘기 나누며 잘 놀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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