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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덕풍계곡

by 변기환 2013. 8. 19.

지난 금요일 집사람과 오랜만에 단둘이 덕풍계곡으로 조촐하고 단출한 힐링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일주일 전 덕풍계곡 산속 야영장을 예약하려니 평일인데도 자리가 없답니다. 1박 2일에 소개된 후 유명세를 타더니 찾는 사람이 많아 자리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다음날 집사람이 알아보겠다고 하길래 내가 못 잡은 자리를 자기라고 별수 있나 했는데 용케 자리를 잡았답니다. 취소가 있으면 연락을 달라는 문자를 남기면서 성사가 되면 법전 청량주를 대접하기로 했다나 뭐라나...

 

금요일 오후 컴퓨터 게임 때문에 집 나서는 걸 싫어하는 우리 집 최대 근심을 어머니께 잠시 맡겨 놓고 석포에 도착했습니다. 집사람은 아직 근무 중이라 농협 마트에서 대충 장을 보고...

해발 880m 석개재를 넘어갑니다.

석개재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가슴이 확~ 트이는 게 전망이 끝내주는군요.

브레이크 망가지면 대략 난감...

고바이가 장난이 아닙니다. 창문을 닫았는데도 브레이크 패드 타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하고 달아오른 디스크 열기가 운전석에서도 느껴집니다.

구불구불한 석개재 넘어 덕풍계곡 유원지에 도착했습니다. 이곳 유원지도 캠프장을 운영합니다만, 사람과 차들이 뒤섞여 북적대는 게 시골 장날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내가 예약한 야영장은 여기서 덕풍계곡을 따라 4km 더 올라가야 합니다.

덕풍계곡 유원지 바로 옆을 흐르는 개울입니다. 아이보다 어른이 더 많고 더 즐거워하는군요.

이 땡볕에 고생인지 피서인지...

줄줄이 주차해 놓은 차 좀 보세요. 덕풍계곡은 지정된 장소가 아니면 취사 야영 금진데, 우리나라는 공중도덕을 지키면 왠지 손해를 보는 느낌입니다. 드라이브 삼아 쓸데없이 오가는 차들 때문에 4km 가는 데 30분 이상 소요... 시작부터 스트레스와 짜증 만땅...

캠핑장 입구 경사가 엄청나게 씨네요. 올라가다 내려오는 차가 있어 잠시 섰는데 못 올라갑니다. 결국, 4륜을 넣고 겨우 올랐네요. 캠핑장은 기대 이하입니다. 샤워장도 없고 화장실은 언제 청소를 했는지 모를 정도로 지저분하고, 반경 50m 내에 화장실 냄새가 진동합니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이틀 동안 관리하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덕분에 그 사람 주려고 산 막걸리가 내 몫이 되긴 했지만...) 여기저기 쓰레기가 뒹굴고 쓰레기 처리장도 제때 치우지를 않아 넘치고 지저분합니다. 개수대 수전도 누를 때마다 물이 나오는 절수형이라 쓸 때마다 욕이 나오는군요.

혼자 땀을 한 됫박 흘리며 짐 옮기고 텐트와 타프 쳐 놓고...

퇴근 시간에 맞춰 석개재를 넘어 집사람 픽업 해 다시 석개재를 넘습니다. 석개재를 세 번 넘었더니 기름 게이지가 확 떨어지는군요.

석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생각 같아서는 저기 황제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 시켜놓고 마담에게 실없는 농담 한마디 던지고 싶지만 일정이 바빠...

남들은 고기 굽고 온갖 기름진 음식을 밤새도록 해 먹을 때 우리 부부는 녹색 캠핑, 저 탄소 배출 캠핑, 친환경 캠핑, 다이어트 캠핑을 합니다. 저녁은 무·콩나물밥...

밥 짓는 동안 뜨끈한 맥주 한 캔으로 기분을 업 시킵니다. 맥스 깡통 디자인 바꿨군요.

구수한 된장국과 사방에 진동하는 고기 굽는 냄새를 반찬 삼아 몸에 좋은 저녁을 먹습니다.

산속이라 날이 금방 저무는군요. 덕풍계곡은 해발이 낮아 밤에도 습하고 후텁지근합니다. 몇 주 전 다녀온 통고산 자연 휴양림의 선선하고 쌀쌀한 저녁이 그립네요.

늦게 도착한 옆집은 텐트 치는데 한 시간, 타프 치는데 또 한 시간... 잠시 자리 비운 사이 그릴에 올려놓은 고기가 다 탔다고 난리 블루스를 칩니다.

집사람은 피곤한지 맥주 반 깡통 비우고 떡 실신...

덥긴 하지만 공기가 맑아 그런지 술이 안 취하네요. 집사람이 자는 틈을 타 야영장 관리하는 사람에게 주려고 사온 막걸리를 땁니다. 이 깊은 오지에서 핸드폰 WiFi 테터링으로 iPAD에서 IPTV를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보다는 이런 급속한 변화가 자꾸 두려워집니다.

자리는 좋은데 바로 옆에 개수대가 있어 밤새도록 인간들이 들락날락 거립니다. 초강력 수면제인 소맥 처방을 하고 싶은데 아쉽게도 소주가 없네요.

"한 달에 책 10권을 읽자" 그 목표의 시작은 박경리의 토지... iPAD에 읽고 싶은 책 모두 담아 언제든지 가지고 다니며 읽을 수 있으니 세상 참 편해졌습니다.

 

최서희의 할머니인 윤 씨 부인이 동학 우두머리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낳은 김환은 구천이라 이름을 바꾸고 최참판댁 종으로 살다가 최치수의 부인이며 김환에게는 형수인 서희의 어머니와 눈이 맞아 지리산을 떠돌다 묘향산에 사랑했던 여인을 묻고 동학 잔당의 세력을 규합해 독립운동을 하려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스스로 목을 매 죽고...

 

간도로 이주해 재산을 빼 앗아간 조준구와 그의 처 홍 씨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악착같이 재산을 모아 거부가 된 최서희는 이사부 댁 아들 이상현의 구애를 슬기롭게 뿌리치고 길상과 결혼을 하는군요. 참으로 지혜롭고 현명한 여인입니다.

길상과 함께 자란 최참판 댁 침모의 딸 봉선은 길상을 사모하지만, 길상의 마음을 얻지 못하자 기생이 되어 유부남인 이상현의 딸 양현을 낳고 아편 중독으로 치매를 앓다가 섬진강에 몸을 던지는군요.

 

월선을 사랑했지만, 무당의 딸이라 이루지 못하고 강청댁과 결혼한 농부 이용... 늘 월선을 마음에 두고 있는 이용을 시기하던 강청댁이 전염병으로 죽자 간도로 훌쩍 떠나버린 월선을 향한 애증이 서희의 아버지 최치수를 살해한 귀녀와 공모한 게 발각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칠성의 처 임이네의 집요한 구애에 한순간 자제력을 잃어 아들 홍이를 얻고 간도로 이주합니다.

 

간도에서 월선을 만났으나 재물 욕심이 아귀와 같은 임이네와 착한 월선 사이에서 수없이 갈등하다가 월선이 암으로 죽자 평사리로 돌아온 이용은 월선을 따라 파란만장했지만 굵직한 생을 마감하는군요.

토지가 최 씨 일가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최서희와 길상이 주연이라면 이용이라는 인물은 토지의 전체 줄거리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조연입니다.

 

박경리가 5부 16권의 대작인 토지를 집필할 때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용이와 월선의 관계를 생각해 냈는지 모르겠지만, 용이가 없었더라면 서희가 조준구에게 재산을 되찾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던 월선의 먼 친척이 되는 공노인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내지 못했으니까요.

밤늦게 잠든 것 같았는데 새벽에 내린 소나기 때문에 옆 텐트 젊은 부부가 시끄럽게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잠을 깨우더니, 새벽 5시에 두 딸과 함께 돌비 디지털 모드로 떠들어 대는 통에 원하지 않는 기상...

아침은 정가 1,500원짜리 컵라면으로...

겨우 7시가 넘었는데 노는 게 바쁜 이들이 또 어디론가 떠나려는지 철수 준비를 서두르는군요.

아침 먹고 잠시 책 좀 읽다가...

해장 겸 운동 겸, 데이트 겸, 겸사겸사 덕풍계곡 트래킹을 나섭니다.

집사람이 또 찍사보다 앞서기 시작하는군요.

덕풍계곡에서 흐르는 물과 괭이골에서 흘러온 물이 만나는 지점인데요. 수만 평은 됨직합니다. 엄청나게 넓네요.

이런 낡은 집 사서 틈틈이 고쳐 사는 게 소원인데 나이가 들고 부모님 연세가 많아지니 뜬구름 같은 소원은 언젠가는 현실이 되겠지요.

가뭄에 들깨가 말라비틀어지네요. 올 장마가 역대 최고로 길었다는 데 여기는 비 한 방울 안 내린 사하라 사막처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메마른 흙 먼지가 폴폴 날립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척박한 땅, 그 땅이 바로 여긴가 봅니다.

본격적으로 덕풍계곡으로 접어듭니다.

덕풍계곡 트래킹은 덕풍계곡을 따라 1~3 용소를 지나 해발 998m 응봉산을 오른 다음 울진 덕구 온천으로 빠지는 7~

8시간 정도 걸리는 긴 코스입니다. 요즘처럼 물이 없을 땐 젖지 않고 갈 수 있지만, 물이 많을 땐 허리까지 물에 잠기는 걸 각오해야 합니다.

올여름 전국이 수해로 난리를 쳤지만 여긴 바짝 말랐네요.

마른 길 놔두고 저렇게 쓸데없는 객기 부렸다가는 덕구 온천 도착하기 전에 지치고 맙니다.

저기 물속에 있는 두 사람 홀딱 벗고 물놀이하다가 갑자기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으니 나오지도 못하고 갇혀 있는 중입니다. 어디를 가나 저런 주책을 부리는 진상이 있습니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확~ 뛰어들고 싶네요.

수많은 세월을 흐르고 흐른 거친 물살이 바위를 매끄럽게 파 놓았네요.

요렇게 로프를 잡고 가야 하는 구간도 있고...

위험한 곳은 철 계단과 난간을 만들어 놨습니다. 물이 불어나면 잠기겠는데요.

수량이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좋으련만... 많이 아쉽네요.

쉬는 동안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무료로 발을 치료하고 있는 토종 닥터 피라미 새끼들...

고추잠자리 꼬리가 빨갛게 여물어 가는 걸 보니 가을이 멀지 않았나 봅니다.

계곡은 물이 적어 볼품이 없지만, 주변 풍광은 아주 좋습니다.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가 성능이 똑딱이 디카 뺨을 때리는군요.

로우 앵글 모드로 찍었더니 코딱지만 한 소(沼)가 광활하게 찍혔네요. 더 올라 가보고 싶지만 새로 산 신발에 적응하지 못 한 발 여기저기 까지고 물집이 잡혀 아쉽지만, 요강소 부근에서 포기하고 돌아섭니다.

따가운 햇볕에 지친 억새의 서걱거림이 거칠고...

당신 속에 내가 있다.

두 시간 걷고 야영장으로 돌아오니 대부분 철수를 해 한적합니다.

타프 밑이긴 하지만 푹푹 찌는 폭염에 점심을 해 먹을 것인지 잠시 고민하다가... 철수 결정...

다시 석개재를 넘어 석포로...

아쉬운 마음에 차에서 내려 경치를 다시 한 번 더 봐 둡니다.

씨감자 채종포(재배지)입니다. 석포엔 감자와 고랭지 채소로 년 소득이 몇억이나 되는 통큰 부자가 꽤 있습니다.

요즘 열차가 예전 투박하고 각진 모습이 아니라 색깔도 알록달록하고 디자인도 이쁘군요. 분천·철암 간 백두대간 협곡 열차는 빨간색인데 날렵하게 생긴 요놈은 중부내륙권과 백두대간을 끼고 순환하는 O-train을 달리는 다람쥐 열차군요. 석포역을 지나 동점역을 향해 달리고 있네요.

강원도 태백 입성...

석포에서 장성까지는 10분 거리... 집사람이 가끔 점심을 먹는 곳이랍니다. 자리가 없어 오픈 된 주방을 지나 작은 골방으로...

난 비빔 막국수... 잘게 간 쇠고기가 씹히는 양념이 달거나 짜지 않고 바로바로 뽑아주는 면도 탄력이 적당해 먹을 만하네요.

집사람은 물 막국수... 육수가 자극적이지 않고 심심하며 구운 달걀을 고명으로 얹어주는 데 국물에 노른자가 풀어지지 않아 깔끔한 게 이것도 먹을 만합니다.

 

음식이란 게 맛으로 만 평가할 수 없죠. 완전히 오픈 된 주방이 무척 깨끗하고 깔끔하지만, 식초 용기에 초파리가 죽어 있고 소금과 설탕을 담아 놓은 그릇이 좀 지저분합니다.

 

그리고 태백 한우가 유명한데 태백 한우가 아니라 수입 소고기를 사용하는 게 많이 아쉽네요. 그러나 공장에서 만든 육수와 면을 사용하거나 조미료에 사이다 넣은 자극적이고 강한 단맛을 내는 도시 막국수와는 절대 비교불가...

배를 든든히 채웠으니 더위를 식힐 서늘 한 곳을 찾아 우리나라에서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함백산으로...

1,573m 함백산 바로 밑까지 차로 오를 수 있지만, 마지막 고바이를 고소 공포증 때문에 못 오르고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아슬아슬하게 파킹 해 놓고 보니

헐~~

여긴 선선하다 못해 춥네요. 덕풍계곡과는 무려 10도 이상 온도 차가 나는군요.

근원 끊는 칼 없고 근심 없애는 약 없다고 했는데 탁~ 트인 높은 산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모든 걸 다 치유하는 만병통치 약이네요. 멀리 석포면 대현리에 있는 달 바위도 보이고...

쨍한 날엔 멀리 소백산도 훤히 보인다고 하는데 요만큼만 보여 줘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매봉산 풍력발전소입니다. 바람이 씽씽 부는 오늘 같은 날 대부분 풍차가 열심히 전기를 만들어 내는데 파업하는 놈이 있네요.

TV 및 통신 중계 안테나들... 풍수 좋은 곳은 절이 다~ 차지했고 전망 좋은 곳은 안테나가 점령했습니다.

태백 선수촌과 오투 골프장이 보이네요.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높은 산이며 자동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산 함백산...

몇 년 전 화방재를 출발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추위에 견고생하며 2시간 30분을 걸어 여길 올랐던 기억이 생생한데 차로 쌩하고 올라오니 기분 참 더럽네요.

화방재에서 피재에 이르는 길고 긴 백두대간 길에 위치한 매봉산 풍력발전소 풍차가 힘차게 돌아가고 그 너머로 두타산 능선이 뚜렷합니다. 오투 스키장의 가장 높은 곳 해발 1,410m 으뜸마루 슬로프 정상도 보이네요. 여기에서 방향에 따라 중급, 상급, 초 상급 코스로 갈라지는 데, 예전에 중급 코스를 탄다는 게 초 상급자 코스로 잘못 들어서 엄청 고생하며 내려왔던 기억이 납니다.

폭염에 후끈 달아있을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네요.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 몸도 마음도 지쳐 갑니다. 이럴 때 저기 철교 위를 시원하게 달리는 기차처럼 어디론가 훌쩍 떠나 보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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