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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대마도

by 변기환 2014. 2. 26.

오랜만에 여행을 떠납니다. 출국 수속을 위해 아침 8시까지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해야 하는 관계로 전날 부산 자갈치시장 구경도 하고 오랜만에 싱싱한 회도 먹을 겸 저녁시간에 맞춰 자갈치 시장에 도착했습니다.



토요일 저녁시간이라 차가 무쟈게 막히네요. 1km 가는데 한 시간은 더 걸린 듯합니다. 무·유료 할 것 없이 모든 주차장이 만 차였지만 같이 간 일행이 아는 횟집에 미리 예약을 해둬 편안하게 주차를 했습니다. 횟집 이층부터는 모텔이라 술 먹고 잘 곳 찾아 여기저기 어슬렁거릴 것 없이 먹고 자고 가 한방에 해결 됩니다.



대게와 바닷가재, 킹크랩 가격이 넘사벽이라먹을까 오랫동안 고민했지만...



장고 끝에 악수를 뒀네요. 7만 원짜리 모둠 회를 시켰는데 회는 싱싱해 좋았지만 손님이 미어터져 횟집이면 의례 있어야 할 부가 서비스가 부족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좋은 날이니 좋은데이로 섭섭함을 달랩니다.



저녁 먹고 근처 곰장어 집에서 도저히 비위에 안 맞는 곰장어 구이에 좋은데이 몇 잔 더하고 나니 연탄가스에 취했는지 술에 취했는지 갑자기 취기가 오르면서 안 좋은데이...



머리 아프고 속 쓰린 다음날 새벽 횟집 주인이 어제저녁 대접이 부족함을 느꼈는지 공짜로 맑은 대구탕을 끓여 주네요. 선수들 어젯밤 그렇게 먹어 댔으니 속이 안 좋은데이라고 할 법도 한데 여전히 좋은데이로군요. 일행 중 시간당 두 홉짜리 소주를 두 병식 들이부어도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 능력이 탁월한 간을 가진 분이 있어 술 먹는 양이 장난이 아닙니다.

그러나 워낙 먹어 대는 양이 많으니 자꾸 실수를 하고 일탈이라 여기기엔 도가 지나친 면이 있어 같이 간 일행 대부분이 드러 내지는 않았지만 여행하는 내내 불만이 많았습니다.


여행은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며 좋은 추억을 남기는 것입니다. 단체로 가는 여행이라면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양보와 배려가 필요합니다.



일요일인데도 여객터미널 주차장이 꽉차서 몇바퀴 돌다가 겨우 빈자리를 찾아 주차를 하고...



대마도 히타카츠항으로 출발합니다. 450명이 승선할 수 있는 배가 만선이랍니다. 부산항에서 히타카츠까지 50km... 배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네요.

부산을 출발할 때 파고가 높아 배가 어찌나 요동치는지 목구멍으로 뭐가 넘어 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는데 옆자리에 있던 분이 오늘은 바다가 잔잔해 미끄러지듯 조용히 왔다고 하길래 내리자마자 멀미약부터 사놨습니다.



가깝고도 먼 땅 대마도는 울릉도의 약 10배 크기며 제주도보다는 훨씬 작고 거제도의 두 배 크기입니다. 부산과 겨우 50km... 일본 본토와는 80km...


섬에서 가까운 나라에 속한다는 국제 영토 규정과 우리 대륙붕에 대마도가 있음에 대마도는 국제 영토 규정에 의해 우리 땅이 분명합니다. 굳이 국제 영토 규정을 들먹이지 않아도 조오련 선수는 부산 다대포에서 대마도까지 헤엄쳐 건넜으며 대마도 남북을 가로지르는 히타카츠에서 이즈하라까지 버스로 두 시간이 걸리지만 부산에서 대마도까지 배로 한 시간 남짓이니 지리적으로 이렇게 가까운 섬은 누가 봐도 우리 땅이 분명합니다. 


대마도는 조선과 일본 양국 사이의 해협에 위치하여 중개역할을 하는 특수한 사정도 있거니와 토지가 협소하고 척박하여 식량을 외부에서 충당해서 생활하여야 하므로 고려 말부터 우리와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특산품을 바치고 그 대가로 곡식을 받아 갔으며, 조정에서도 그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대마도를 우대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기근이 심할 때면 그들은 해적으로 돌변하여 뒷통수를 치니 고려 말과 조선 초기까지 총 3번에 거쳐 대마도를 정벌했습니다. 특히 세종은 이종무를 시켜 대마도를 정벌하고자 했으나 수비가 완강했고 복잡한 지형의 현지 사정에 어두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퇴각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조선 중기 당파싸움에 정신이 없던 조정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대마도는 조선을 약탈하는 왜구의 근거지가 돼 버렸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거의 방치하다 시피 합니다. 그사이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키기 위해 대마도를 전초기지화하니 이때부터 쓰시마란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게 되면서 일본 땅이 되어 버립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대마도를 일본에 줘 버렸고 독도까지 주기엔 켕기는 게 있었는지 독도는 '너들이 알아서해'라고 했으니 지금까지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것입니다. 지금 대마도가 일본 땅이 돼 버린 건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포기해 버린 건 아닌지 역사를 돌아보고 잘못이 있었으면 반성해야겠습니다.



도로 오른쪽에서 달려오는 차들이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영 적응이 안되는군요.



인구 약 32,000명 우리나라 거제도와 위도가 같아 자연환경이 비슷합니다. 오랜된 것을 무조건 헐어 버리는 우리와는 달리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며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날이 맑을 때에는 부산항은 물론 영도대교까지 선명하게 보인다는데 오늘은 중국발 미세 먼지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앞 바다로 길게 뻗은 곶에 있는 둥근 건물이 해상자위대 레이더 기지랍니다.

조선조 숙종 29년 2월 5일(음력) 청명한 아침에 대마도 도주의 취임 축하를 위해 부산을 떠난 정사 한천석 부사 박세양 등 113명의 조선역관 일행은 저녁 무렵 대마도 입항 직전에 갑자기 몰아닥친 폭풍으로 애석하게도 전원이 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당시 배가 침몰한 곳이 해상자위대 레이더 기지 바로 앞이라 합니다. 그곳이 내려다 보이는 한국전망대에 그들의 넋을 기리는 조선역관 순난지 비가 서 있습니다.



아직 아침·저녁으로 쌀쌀한데 여긴 동백꽃이 한창입니다.



곳곳에 수선화도 탐스럽게 폈고...



여기저기 야생 굴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통나무를 파내어 만든 벌통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 줄 알았는데 대마도 벌통도 우리 것과 똑같더군요. 대마도는 어디를 가나 벌통이 흔합니다.



일본은 법률상으로 유해는 화장을 원칙으로 합니다. 우리처럼 따로 자리를 마련하고 봉분을 꾸미는 형태가 아니라 절에 있는 묘지나 공원묘지 등에 만들어진 하나의 가족 묘에 가족이 모두 납골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마을 근처에 묘지가 있습니다. 사후를 대하는 것부터 우리와 많이 다르군요.



이즈하라 가는 길에 대마도 민속 박물관에 들렀는데 전시된 유물의 가짓수와 규모를 보면 유물 몇 점 전시해 놓고는 박물관이라고 우기는 우리나라 공무원은 일본의 박물관만 벤치마킹했지 박물관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이해조차 못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조상이 뜨끈뜨끈한 온돌에서 등지질 때 야들은 화롯불 피워 놓고 차가운 다다미에 누워 달달 떨었겠지요.



대마도는 굉장히 많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륙 깊숙이 바닷물이 들어오죠. 그래서 해안선을 따라 있는 섬도 많지만 내륙에도 섬들이 많습니다.



에보시다케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소만입니다.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베트남의 하룽베이를 닮았다 해서 대마도의 하룽베이라는 데 하룽베이가 알면 기분 나쁘겠네요.



날씨는 포근한데 중국발 미세먼지로 인해 조망이 많이 아쉽습니다.



일본은 경차 천지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에 가면 경차가 많은 것에 놀라고 일본 사람이 우리나라에 오면 중 대형 차가 많은 것에 놀란다고 합니다.

일본에 경차가 많은 이유가 차고지 때문이고 비싼 통행료 때문입니다. 경차를 제외한 모든 차는 주차할 수 있는 차고지가 있어야 구입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 통행비가 우리의 몇 배가 되니 차고지 면제와 통행료 감면이 되는 경차를 더 선호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산림 50% 이상이 인공조림입니다. 특히 50년대를 이후 본격적으로 가꾸기 시작했는데 이때 심은 수목 대부분이 스기라는 삼나무와 히노키라는 편백 나무입니다.



일본 본토도 그렇지만 대마도 역시 사람 사는 마을엔 신사가 있으며 우리나라 절 입구에 서 있는 일주문처럼 신사 입구엔 신사를 알리는 조형물인 도리이가 서 있습니다. 우리는 돌탑을 쌓아 소원을 빌지만 일본에서는 도리이에 돌을 올려놓으면서 소원을 비는 모양입니다.



바다의 신을 모신 해궁으로 용궁 전설이 있는 와타즈미 신사... 해궁답게 바다로 나 있는 도리이를 통해 용왕이 신사로 들어 온답니다. 세계 어디나 종교는 구라가 심하군요.



히타카츠에서 382번 국로를 버스로 한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이즈하라...



풍경은 우리나라 여느 소도시와 다를 바 없지만 느낌은 전혀 새롭네요.



일본의 거리엔 도로 가에 주·정차한 차가 한 대도 없습니다. 심지어 버스도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전용 주차장에 세운 후 승·하차를 하게 합니다. 다른 차량에 방해가 되든 말든 내가 원하는 곳에 내리고 타야 하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문화입니다.



호텔 객실은 코딱지 만 하고 우리나라엔 여인숙에도 있는 냉장고도 없으며 뭐 좀 부탁하면 인상부터 써대는 주인을 보면 연간 7만 명이 대접 못 받으면서 돈 써대는 호구 짓을 왜 하는지 한심해집니다.

한글을 쓰지 못하는 자갈치 아지매도 물건을 팔기 위해 일본말을 하는데 이곳 소득 대부분이 관광이고 관광객 99.99%가 우리나라 사람인데 우리말로 뭘 물으면 바로 고개부터 돌리고 식당에서 다쿠앙 더 달라고 하면 두 쪽을 주면서 100엔을 달라고 합니다.



저녁 먹고 기린 이치방 맥주와 찝찌름한 마른 오징어 안주를 사와 간단히 한잔했습니다. 전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100엔에 1,800원 정도라 뭘 사기가 두려웠는데 지금은 1,000원 이 조금 넘으니 크게 부담이 없습니다. 아이패드 에어를 살까 해서 여기저기를 돌아보니 다행히 파는 없네요. 술김에 샀더라면 몇 날 며칠 집사람에게 갈굼을 당할 뻔했습니다.



다음날 낯선 땅 대마도 열팔은행 위로 아침 해가 떴습니다.



산책 삼아 대마도 시청이 있는 이즈하라 여기저기를 둘러봅니다. 흰색 번호판은 중·대형차, 소형차는 노란색, 영업용은 파란색 번호판입니다.



일광욕을 즐기는 냥이들이 재미있는지 산책 나온 동네 노인들이 무척 신기한 듯 쳐다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도 고령화가 큰 걸림돌입니다. 특히 대마도는 대학교가 없고 젊은이가 선호하는 일자리가 부족해 다른 지방보다 고령화가 더 심하다고 합니다.



거리는 무척 깨끗하고 깔끔하며 오랜된 건물과 신식 건물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쓰레기를 담아 놓은 봉투를 개나 고양이가 뒤지지 않도록 그물망에 보관하네요.



일본은 대부분 집이 작지만 아담한 정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성스럽게 가꾸고 손질한 소나무를 보니 이집 주인은 한 성격하겠네요.



우리나라 관광객이 진상 짓을 많이 하나 봅니다. 곳곳에 한국 사람만 못 들어 오게 방을 붙여놨습니다.



아침을 먹고 산토리 맥주에서 최근 출시한 보스 깡통 커피 한잔합니다. 이거 의외로 맛이 훌륭하네요.



커피 마시며 뭔가 흠잡을 데가 있는지 유심히 보니 모든 차가 정지선 30cm 전방에서 정확히 정차를 합니다. 우리는 몇 십 년 전부터 정지선 지키기 운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지키지 않는 걸 보면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일본 국민성은 철저합니다.



웃옷을 벗어 버리고 싶을 만큼 포근하고 따듯한 날씨입니다.



대마도는 거제도의 두 배 정도 되는 크기지만 볼거리는 거의 없습니다. 들뜬 마음에 대마도 여행을 왔다가 실망을 할지도 모릅니다.



대마도는 관광업이 주 수입원입니다. 물론 관광객 대부분이 대접 못 받는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사방이 바다라 어업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입니다. 그래선지 이즈하라에는 수산물을 경매하는 위판장도 어물을 사고파는 가게도 없으며 배도 대부분 낚싯배 수준입니다.



일본은 어디를 가나 철저하게 깨끗하고 청결합니다. 세계 어디를 가도 다리 밑이 제일 지저분한데 일본은 다리 밑조차 담배꽁초 하나 없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재수 없는 새 취급하는 까마귀가 많은 대마도... 일본은 까마귀가 영리하고 독수리와 맞짱 뜬다고 용맹한 새라고 한답니다. 사소한 것부터 일본과 우리는 많이 다르네요.



땅은 넓은 데 인구가 적고 공해를 배출하는 공장이 없어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매가 둥지를 보수 하기 위해 부지런히 자재를 물어 나르는군요.



우리나라에선 멸종 되다시피 했는데 여긴 어딜가나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호크아이가 사냥감을 포착했는지 막 다이빙을 시작하네요.



현지인은 별로 없고 대부분이 한국 관광객들입니다. 한국 관광객이 없으면 거리는 적막강산...



바닷물이 드나드는 수로를 따라 밀물이면 복어와 숭어 새끼들이 바글바글하네요.



수동식 펌프를 아직 사용하고 있군요. 어릴 적 우리 집은 수도가 없어 저녁 무렵 수동식 펌프가 있는 큰집까지 가서 물을 길어와야 했는데 언젠가 한겨울 물을 내리지 않아 펌프가 얼어 큰어머니께 혼난 기억이 납니다.



한바탕 한국 관광객이 휩쓸고 지나간 거리엔 날아다니는 날벌레 한 마리 없을 정도로 썰렁합니다.



우리말로 호객을 하는 우호적인 가계도 있지만...



이렇게 왕따를 놓는 곳이 많습니다.



여기도 왕따...



저기도 왕따...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속도 좋습니다. 이런 대접받으면서도 연간 7만 명이 여기에 와서 돈을 써대니...



생활 폐수를 그대로 방류하는 것 같은데 의외로 깨끗합니다.




우리나라 절은 산속 깊숙이 숨어들었는데 이곳 절은 대중 밀착형입니다. 정토종 수선사는 묘지를 겸하고 있습니다.



잡신을 믿는 나라답게 집집마다 믿는 신도 가지 가지입니다. 이 집은 앞치마 신을 믿나 봅니다.



덕혜옹주 결혼 기념비입니다. 덕혜옹주는 회갑은 맞은 고종과 궁녀 사이에 태어난 고종의 고명딸입니다. 일본에 볼모로 잡혀가 대마도 도주의 후예와 결혼을 했다고 이를 기념해 대마도에서 세운 비랍니다. 그러나 덕혜옹주가 치매로 이혼을 하자 아무렇게 방치되다가 2011년 한국 관광객이 많아지자 슬그머니 복원을 해 놓았다네요.


말 나온 김에 덕혜옹주 얘기 좀 해 볼까요? 덕혜옹주는 어머니가 궁녀였다는 이유로 일본 총독부에 의해 왕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여섯 살 때 정식으로 황실 족보에 이름을 올리게 됩니다. 고종은 덕혜가 일본인과 결혼을 하거나 일제에 볼모도 잡혀가는 걸 염려해서 황실의 시종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과 약혼을 시도하였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했다고 합니다. 같은 해 고종은 승하하고...

덕혜옹주는 일본에서 여자 학습원을 다녔는데, 항상 말이 없고 급우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원래가 선천적으로 허약 체질인데다가 13살 나이에 볼모로 잡혀가 항상 감시의 눈초리가 따라다녔으며 나라를 빼앗긴 왕의 딸이었으니 일본 급우들이 왕따, 빵 셔틀, 데이터 셔틀 등 갖은 구박을 다 했겠지요.

아버지처럼 따르던 오빠 순종이 위독하자 잠시 귀국했으며 순종이 승하했으나 장례에 참석하지 못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갑니다. 일제는 덕혜옹주가 순종의 장례에 참석조차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후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투병을 하자 잠시 귀국했으나 역시 또 일본으로 끌려 갑니다. 어머니의 장례에도 자기들 규범에 어긋난다고 상복을 입지 못하게 해 여염집 여자가 탈상 뒤 입는 흰 치마저고리를 입게 했다고 합니다. 이 무렵부터 몽유증 증세가 있어 치료를 받았으며 열아홉에 대마도 번주 다케유키와 결혼해 딸 정혜를 낳습니다.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이혼을 하고 15년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외동딸 정혜는 결혼 3개월 만에 이혼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갈등을 하다가 유서를 남긴 채 남알프스에서 실종됩니다.


덕혜옹주는 해방 후 고국에 돌아오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이승만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해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해방 17년 되던 해 마침내 귀국을 하였으나 대한민국 호적은 20년 뒤에나 만들어지고 치매와 실어증으로 고생하다가 1989년 4월 21일 낙선재에서 76세를 일기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납니다.

고명딸로 태어나 부모와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한껏 받아야 할 나이에 일제에 의해 볼모로 잡혀가 감시와 구속, 속박을 받으며 자랐고 이를 하소연할 때 없어 가슴으로 삭혀야 했으니 그 스트레스가 몽유병, 치매, 실어증 같은 중병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임금이 임금 구실을 못하고 신하가 매관매직으로 자신의 사리사욕만 채우기 바빴던 암울한 조선 말기, 그로 인해 고통받고 비극적인 삶을 산 건 백성뿐만 아니었습니다.



한옥의 특징이 자연스러움이라면 일본 집의 특징은 아기자기함이랄까요.



일본엔 사람 사는 곳이면 크던 작던 '신사'가 있습니다. '신사'란 태평양전쟁 폐전 이전까지 일본이 국교인 '신도'의 사당입니다. 즉, 신도의 신을 제사 지내는 곳이 '신사'입니다. '신도'란 일본의 고유 민족신앙으로, 선조나 자연을 숭배하는 토착 신앙입니다.


'어떻게 보면 종교라는 의미에서 우리의 교회나 절 비슷한 곳입니다.'라고 하면 그럼 최근 일본 정치인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게 무슨 문제냐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겠죠?

 '야스쿠니 신사'는 1868년 메이지 유신에 성공한 일왕 메이지가 도쿠가와 막부와의 전투에서 숨진 3,500여 명을 추모하기 위해 다음해 왕궁 옆에 만든 호국신사입니다. 이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 되었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총리나 각료의 공식참배 여부가 주목받게 됩니다.


즉, '야스쿠니 신사'는 여느 신사와는 달리 신사를 세운 목적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최근 일본 정치인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아베는 보고 있나?



잠시 이즈하라 여기저기를 둘러보다가 돌아갈 시간이 다 돼 터미널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은 개념 없는 된장녀가 일본을 담배 꼬나들고 스마트폰에 빠져있는 된장남이 문제네요.



본토에서 페리호가 접근을 합니다.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화물이더군요.



돌아갈 배입니다. 배 구조가 독특해 흔들릴 것 같지 않지만 올 때 한 시간 동안 멀미에 시달려 고민 없이 멀미약을 먹었더니 두 시간 내내 푹 잤습니다.

좋은 곳 많은데 왜 하필이면 일본이냐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일본을 앞서기 위해서는 일본을 잘 알아야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번 여행은 많은 걸 깨닫게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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