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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ain Climbing

황악산

by 변기환 2014. 2. 17.

지난 토요일 황악산을 오르기 위해 김천 직지사를 찾았습니다. 황악산은 추풍령에서 민주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7부 능선까지 파고든 계곡이 깊어 숲이 울창하지만 정상엔 시야를 가로막는 잡목이 없어 시원하게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산림청이 선정한 100대 명산입니다.

옛날엔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이라 불렀고 험하고 높은 봉우리라는 뜻에서 큰산 악(岳)을 쓰는 산이지만 바위가 없는 토산이라 누를 황자를 쓴답니다.

산세가 수려하다고는 하나 일단 산 이름에 악(岳) 자가 들어갑니다. 산을 가끔 오르는 사람도 악(岳) 자가 들어간 산은 피하는 게 상식입니다. 치악산이나 월악산, 설악산처럼 이름만 들어도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그런 축에 속하는 매우 가파르고 험준한 산입니다.



GPS 트랙을 구글어스로 불러오면 전체 경로를 3D로 한눈에 볼 수 있지 만, 이거 보고 나면 산에 오를 생각이 싹~ 사라질 겁니다.



산을 오르기 전 가야 할 길을 지도를 보고 익히고 블로그나 카페를 뒤져 거리와 소요시간 및 중요한 정보를 꼼꼼히 체크합니다. 그래야 전체 이동거리와 소요 시간을 알 수 있고 등산하는 도중에 길을 잃고 엉뚱한 곳을 헤매지 않으니까요.

처음 계획은 직지사에서 망월봉, 신선봉을 거쳐 황악산으로 오르기로 했으나, 현장에서 바로 경로를 수정했습니다. 직지사를 출발 운수암까지 시멘트 길을 걷다가 능선에 올라선 다음 능선을 따라 황악산 정상을 정복 한 후 신선봉, 망월봉을 지나 하산하는 11km 5시간 이상 걸리는 멀고 험한 코스입니다.



직지사 바로 앞에 주차장이 있는데 뒤차에 떠밀려 얼떨결에 그냥 들어왔습니다. 문화재 관람료 2,500원을 내야 하는데 수금하는 직원이 직지사 신도로 여겼는지 그냥 보내주네요.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집사람에게 출발을 알리는 문자를 보낸 다음 운수암까지 시멘트 길을 따라 걷습니다.



왼쪽 길을 따라 망월봉, 신선봉을 따라 황악산을 오르는 것으로 계획했는데 등산객 모두가 오른쪽 길을 갑니다. 모르는 길을 갈 때는 무조건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으로 따라가는 게 장땡... 오늘 고집부리고 왼쪽 은선암 쪽으로 올랐더라면 땅을 치고 후회할 뻔했습니다.



왠지 운수 좋을 듯한 운수암 방향으로...



집 나설 때는 영하 10도 였는데 여긴 완전 봄 날씨네요. 더울 땐 벗고 추울 땐 껴 입는 게 등산의 기본 요령입니다. 더운데 귀찮다고 겉옷을 벗지 않고 똥고집 부렸다간 땀을 많이 흘려 금방 지치고 탈진합니다.



운수암을 지나자 바로 가팔라지는군요.



숨이 턱까지 차는 급경사를 지나 산등성이로 올라섭니다.



백두산 방향인 여시골은 괘방령 너머 추풍령으로 이어지고 지리산 쪽으로는 바람재와 우두령을 지나 물한계곡의 민주지산으로 이어집니다.



한참을 백두대간을 따라 능선을 걷습니다. 가파르게 치고 올라야 하는 구간도 있고...



잠시긴 하지만 숨을 고를 수 있는 오솔길도 있습니다.



8부 능선에 올라서자 오르막이 씨네요.



황악산엔 소나무나 낙엽송, 잣나무 같은 침엽수는 전혀 없고 온통 앙상한 활엽수 천지입니다. 그래선지 황량하기가 그지없네요.



집에서 차로 서너 시간, 걸어서 서너 시간이면 전국 어느 산이든 대부분 오를 수 있으니 우리나라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정말 축복입니다.



오랜만에 청명한 겨울 하늘을 보네요.



바람재 방향으로 신선봉이 보이고 그 너머로 희미하게 솟은 민주지산이 보입니다. 온통 활엽수 천지라 긴 능선을 따라 새겨진 독특한 패턴이 마치 빡빡 깎은 머리를 보는 것 같습니다.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혀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싸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환 - 세월이 가면 中 -



코발트색 하늘빛이 날카로워 괜히 나무에 쌓인 눈을 던져 봅니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활엽수는 앙상하고 삭막한 느낌이지만, 솜털 옷을 입고 홀로 서 있으니 나름 작품이 되는군요.



싸리나무 가지에도 탐스러운 눈 사탕이 열렸습니다.



수요일에만 산을 다니는 수요 산악회는 회원들 대부분이 백수인가 봅니다.



한참을 가파르게 치고 오르니 여기가 산꼭대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너른 지대가 나타나고 근처에 정상이 보이네요.



열 평 남짓한 정상엔 벌써 많은 사람이 모여 도떼기 시장처럼 시끄럽습니다.



직지사를 출발한 지 두 시간 드뎌 황악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산에 올라 사진을 찍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요즘 폰카 성능이 웬만한 똑딱이만큼 되고 행적을 보고해야 할 SNS 때문에 너 나 할 것 없이 정상석을 붙들고 인증 사진을 찍는 통에 사람 배경 없는 정상석 찍기도 힘듭니다.



옅은 운무 때문에 조망은 실망스럽지만, 코끝과 귓불을 스쳐가는 바람은 매우 상쾌합니다.



발아래에 어촌리 저수지가 보이고 겹겹이 쌓인 능선 너머로 곤천산이 보입니다. 산 위에 올라서니 이정선의 "산 위에 올라"라는 노래 가사를 떠올려 봅니다.


산 위에 올라 세상을 보네... 산 위에 올라 발아래 세상을 보네... 이렇게 내려다보면 아무 생각이 없네...



적당한 곳에서 점심을 먹고 칼등같이 좁은 능선 길을 따라 하산할 겁니다. 희미하게 보이던 민주지산이 또렷하군요.



날씨가 좋을 땐 구미 금오산과 남덕유산에서 향적봉까지 고단한 몸을 길게 누운 덕유산 자락을 다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조망이 꽝이네요.



사람들 피해 한적한 곳에 숨어 대충 점심을 해결하고...



따끈한 커피 한잔에 잠시 세상 근심을 잊어봅니다.



점심 먹은 후 좀 쉬다가 황악산을 내려와 나지막하지만 경사가 꿰 센 신선봉을 오릅니다.



MTB 경기장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베어낸 나무를 운반하려고 닦아 놓은 길이였군요. 조기서 자전거 타면 스릴이 끝내주겠습니다.



신선봉 도착...



눈 쌓인 길이나...



눈 녹은 길이나 미끄럽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서둘러 망월봉에 도착했으나 아직 1.2km를 더 내려가야 합니다.



배가 고파 배낭을 뒤져보니 집사람이 물 대신 먹으라고 홍삼 액기스를 넣어놨군요. 근데 홍삼을 농축한 게 아니라 살짝 적신 거네요. 홍삼 농축액이 무려 0.36%...



눈이 녹아 질퍽한 길을 지나자 높낮이가 엇박자인 통나무 계간이 끝없이 놓여있습니다.



직지사가 보이는 걸 보니 거의 다 내려온 것 같습니다.



잠시 거친 숨을 고르면서 지나온 황악산을 올려다봅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읽고 다방 마담 10년이면 웬만한 점쟁이 뺨치듯 산을 몇 년 째 다니다 보니 반 풍수가 다 됐습니다.


내 기준으로 풍수와 접근성을 고려했을 때 으뜸인 절이 가야산 자락에 자리 잡은 해인사고 그 다음이 용문산을 덕을 보는 양평의 용문사, 그리고 마지막이 직지사입니다. 풍수가 좋아도 높은 산 중턱에 있으면 찾아오는 신도가 적어 살림살이가 궁핍할 겁니다.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이라는 문화재가 있고 용문사는 바로 앞에 용문산 위락 단지가 있으며 직지사 역시 무궁화 공원과 김천 세계도자기 박물관이 있어 절을 찾는 신도뿐만 아니라 공원과 박물관을 찾는 행락객이 많아 여러 가지 부수적인 수입이 짭짤하지요. 조상이 터를 잘 잡아야 후대가 덕을 보듯 절 역시 풍수와 접근성을 고려한 장소 선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풍수가 좋으니 산기슭 여기저기 크고 작은 암자가 많이 있습니다. 아마 문수암??? 일... 겁니다.



백련암이던가? 나이가 드니 한참 얘기하다가 주제를 놓치기 일쑤고 대충 기억한 것은 전두엽 어디에 숨겨 놨는지 찾을 수가 없네요.



저거슨 명적정사가 확실합니다.



올겨울은 춥지 않아 조릿대가 날씨 덕을 많이 봤습니다.



직지사가 가까워져 오자 풍경이 확 바뀌는군요.



다 내려왔습니다. 5시간 걸렸네요.



집에서 걱정하는 집사람에게 하산했다는 문자로 안심 시키고 문화재 관람료는 내지 않았지만, 기왕 먼 걸음 한 김에 잠시 직지사를 둘러봅니다.



예전 같았으면 몇 날 며칠 정으로 쪼아야 할 수고를 공구가 대신해 주니 일하기 완전 껌이네요.



돌담과 시멘트 담이 매우 조화롭지 못합니다.



주요 건물 대부분이 근래 지어진듯하고 잘 꾸며진 정원도 자연스러움보다는 인공적인 느낌이 너무 강하네요.



우리 한옥의 특징이 간결함과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곡선인데 언제부터 퍼즐 끼워 맞추는 식으로 공법이 변해 버렸는지 한옥 짓는 사람에게 물어 보고 싶군요.


요즘 전통을 계승한다는 젊은 사람들 주장을 듣다 보면 버터 냄새 풍기며 공자와 맹자를 논하는 듯해서 많이 안타깝습니다.



그나마 이끼 낀 바위가 세월의 깊이를 말해주는군요.

언젠가 집사람이 묻더군요. 위험하게 왜 혼자 산을 다니냐고...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혼자 느긋하게 산을 오르다 보면 여럿이 다니는 등산보다 더 섬세한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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