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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ain Climbing

단양에서 오른 소백산

by 변기환 2016. 1. 31.

문경새제 조령 3관문에서 출발하는 마역봉을 오르기로 했으나, 어젯밤 내린 비가 산에는 눈이 되어 쌓였고 집사람과 인적이 드문 위험한 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안전한 집 근처 소백산을 오르기로 계획을 급변경했습니다.

"당신이 철마다 오르는 게 소백산인데 그렇게 수도 없이 올라 포스팅 하고도 또 할 얘기가 있어?" 하시는 분이 계실 게 뻔해 오늘은 단양 어의곡에서 소백산 비로봉을 오를 겁니다. 어의곡 주차장은 이미 만차 갓길에 충분히 차를 댈 수 있는데 멀리서 경광봉을 든 사람이 손짓하길래 다가갔더니 주차료 3,000원을 내고 펜션 주차장에 주차하라고 하네요. 내가 그냥 갓길에 대겠다고 하니 지가 무슨 국립공원직원인 양 뭐라 뭐라 ㅈㄹ을 해대는데 댓바람부터 싫은 소리 해봤자 온종일 감정만 상할 것 같아서 그냥 주차료를 주고 말았는데 생각할수록 괘씸하네요.

나이 들어 뜨끈뜨끈한 벽난로를 끼고 군고구마 까 먹으며 책도 읽고 책도 쓰고 그렇게 낭만적인 노후를 맞고 싶은데 가능이나 할런지...

다들 몸도 풀고 등산화 끈도 다잡아 매고 아이젠도 착용하는 등 산에 오를 준비하는군요.

뭐야~ 비로봉까지 10.2km ???

그럴리가 없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늦은맥이재를 거처 국망봉으로 해서 비로봉을 오르는 코스로군요. 이 코스로 비로봉까지는 내 걸음으로도 3시간 이상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오늘 저녁 중요한 약속이 있어 아쉽지만, 이 코스는 다음에 정복하기로 하고 오늘은 짧은 코스를 다녀와야겠네요.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비로봉으로 바로 오르는 등산로를 찾았습니다.

비로봉까지 5.1km 내 걸음으로 2시간 정도 걸리는 아주 적당한 거리입니다.

계곡을 따라 은근한 오르막이 이어집니다. 어젯밤 영주는 비가 조금 내렸는데 여긴 눈만 살짝 뿌렸네요.

얇은 간절기 등산 바지와 티를 입은 나는 더워 죽겠는데 다들 히말라야 8천 고지를 오를 때나 입는 헤비급 구스다운 패딩을 입고도 땀 한 방울 안 흘리네요.

계곡이 끝나자 능선을 치고 오르는 가파른 구간이 시작됩니다.

여기가 명절 귀향·귀성 고속도로도 아닌데 걸음이 느린 산악회원이 길을 막아 지체와 정체로 가다 서다를 반복합니다. 산에서는 길 한쪽을 비워주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가파른 구간을 치고 오르자 조금 느긋한 능선이 이어지네요.

슬슬 정상이 가까워옵니다.

소백산 비로봉의 매서운 칼바람에 맞서기 싫은 소나무가 그냥 편하게 누워 버렸군요. 즐길 수 없으면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오늘 소백산 비로봉은 커다란 구름 모자를 썼습니다.

아~ 멋진 설경을 기대했건만, 눈은 적고 바람은 없고 도떼기시장처럼 사람만 바글바글합니다.

스마트폰이 우리나라 등산문화를 다 버려놨습니다.

올랐으니 내려갑니다.

저기가 어의곡 비로봉 코스 포토스팟인가보네요.

아주 보란 듯이 취사를 하네요. 우리나라는 모든 산에서 취사를 할 수 없습니다. 특히 국립공원은 법으로 엄격히 취사를 금지하고 있으며 적발되면 얄짤 없이 벌금 100,000원입니다. 법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행정편의주의도 문제지만, 우리나라 산은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 끼만 해결하면 당일 종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됩니다. 어차피 라면이나 끓여 먹을 거 그냥 보온병에 담아온 따끈한 물에 컵라면을 데워 먹으면 되는데 스스로가 범법자인 줄 아는지 모르는지 참 딱하네요.

요즘 보온병은 손이 얼어 젓가락질이 안 되는 날씨에도 충분히 컵라면을 데워 먹을 만큼 성능이 좋습니다. 밥이 아니면 뭘 먹은 것 같지 않은 분은 보온 도시락에 밥을 싸면 되고 국물 없이는 밥이 안 넘어가는 식성이 더럽게 까다로운 분은 보온 도시락에 뜨거운 국물을 담아가면 입천장 다~ 까집니다.

잘 모르는 사람은 버너가 위험하지 않은데 왜 취사를 못 하게 하는지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영하의 날씨에 가스버너는 가스가 얼어 커피 한잔 분량의 물도 못 끓입니다. 이소 부탄가스를 사용하면 그나마 좀 나은데 그것도 영하 5도 이하인 경우 맥을 못 춥니다. 해서, 산 좀 다녀 본 사람은 대부분 화력이 좋은 가솔린 버너를 사용하는데 가솔린 버너의 위험성은 뭐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국립공원에서 취사를 금지한 후 산불발생이 훨씬 줄었다는 통계가 말해 주 듯 지정된 곳이 아니면 취사를 금지하는 건 산불방지를 위해 어쩔수 없는 조치인 것입니다. 그러니 대 놓고 버너를 피워 대는 산악회 당신들 정말 정말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산에서 술 좀 먹지 마세요. 뒤따라가는 사람 술 냄새에 아주 죽습니다.

눈이 무척 건조해 그냥 죽죽 미끄러지네요. 나는 아이젠이 거추장스러워 웬만해서는 아이젠을 착용하지를 않습니다. 요령만 있으면 아이젠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안전하게 눈길을 다닐 수 있습니다.

다~ 내려 왔네요. 점심시간 포함 4시간 정도 걸었습니다. 오늘은 날이 너무 포근해 볼을 할퀴는 매서운 소백산의 칼바람과 황홀한 설경이 그리워지는 아쉬운 산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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