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매년 서너 번 태백산을 올랐습니다. 집에서 가깝고 등산코스도 짧으며 그렇게 힘들지 않기 때문에 배낭 없이 훌쩍 다녀올 수 있으니 산책 삼아 바람 쐬러 자주 찾던 산입니다. 그러나 겨울이면 입구부터 정상까지 길게 늘어선 어마무시한 인파와 무질서에 질려 언젠가부터 좋지 않았던 기억이 많아 발길이 뜸했습니다. 오늘은 늦은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다녀올 산을 물색하던 중 태백산이 떠올라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태백산은 당골 또는 유일사 매표소에서 출발하는데 나는 인적이 드문 화방재에서 출발합니다. 화방재 정상 주유소 맞은편에 차를 세워두고 정상을 오른 후 당골로 하산 택시를 타고 원점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이 구간이 함백산, 태백산, 소백산을 잇는 백두대간 길입니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없어진 지 오래됐고 대부분 지자체에서 공원 입장료를 받지 않는데 입장료 2,000원을 받는군요. 무슨 명분이고 어디에 사용하는지 따지고 싶어집니다.
제법 가파른 길을 치고 오르면 신식 신령각을 만납니다.
화방재에서 사길령 매표소를 지나 태백산 천재단까지는 약 4.7km 거리입니다.
아직은 쌀쌀하고 손끝이 시리지만, 벌써 봄 내음이 나는 것 같네요.
유일사 매표소 코스와 화방재 코스가 만나는 지점입니다. 예전에는 여기서 유일사로 내려가는 길이 없었던 것 같은데 새로 길을 냈네요.
오른쪽이 유일사 매표소 방향이며 왼쪽이 유일사 직진하면 화방재 방향입니다.
본격적으로 가파른 구간이 시작됩니다.
매년 태백산을 찾는 엄청난 인파로 인해 산은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신음하네요.
태백산 공식 포토스팟은 산악회원이 독차지해 아무리 기다려도 눈치를 줘도 도무지 비켜주질 않습니다.
다들 아이젠을 착용하는데 나는 대부분 산을 산소, 스틱, 아이젠, 셰르파, 포터 없이 단독 등정합니다.
비참하게 천 년을 사는 것보다 소나무처럼 늠름하게 오백 년만 사는 게 훨~ 좋아...
장군봉에 올랐습니다. 태백산은 장군봉 해발이 더 높으나 예로부터 하늘에 제를 올리던 천제단(천왕단)을 정상으로 여깁니다.
멀지 않은 곳에 천제단(천왕단)이 보입니다.
천제단입니다.
천제단에서 바라본 장군봉입니다. 오늘은 등산객이 적어 한산하네요.
1시간 46분 걸렸습니다.
오늘도 짙은 연무로 인해 조망이 엉망인 가운데 함백산 정상이 살짝 보입니다.
남쪽으로는 구룡산과 소백산 능선이 얼핏 보이고...
필승사격장도 보입니다.
동남쪽 방향으로는 문수봉이 보입니다.
문수봉을 거쳐 하산하기로 했으나 길이 엉망진창이라 당골로 내려갑니다.
당골로 내려가는 길 역시 겨우내 쌓였던 눈이 녹아 질척하고 매우 미끄럽습니다.
망경사가 등산객으로 몸살을 앓는군요.
몇 년 전 한겨울 순진한 친구를 꼬셔 봉화 청옥산에서 태백산까지 8시간을 걸어 한밤중에 망경사를 찾았을 때 목소리가 걸걸한 공양 보살이 차려준 따끈한 밥을 얻어먹었는데 요즘 등산객 하는 짓을 보니 이제는 어림도 없겠네요.
우리나라 산악회 만의 독특하고 요상한 문화...
미끄러운 길과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니...
봄이 오는 우렁찬 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집니다.
다 내려왔습니다.
아이가 어렸을 적 어린이날 여기서 찍은 사진이 생각나...
뒤져보니 있네요. 저 때가 예뻤는데...
오랜만에 오른 태백산은 산악회원의 고성방가와 여기저기 휴대용 스피커에서 엇박자로 떠들어 대는 또롯또에 내내 불편했고 화가 났으며 정상 주목군락 사이에 버려진 엄청난 쓰레기와 거대한 야외식당으로 변해버린 민족의 영산 태백산의 안타까운 현실에 다시 오르고 싶지 않은 산이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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