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영주시에서 주최하는 소백산 철쭉제 첫날이라 어느 코스를 오르든 등산객으로 미어터질 것 같아 눈 뜨자 말자 부리나케 준비해 국망봉 아래 초암사를 찾았습니다. 철쭉제 기간이라 주차료 6천 원을 안 받네요.
초암사는 전에 없던 일주문을 새로 세웠습니다. 우리나라 사찰 일주문이 보기에는 마치 국민 약골 이윤석이 강호동을 이고 있는 것처럼 불안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 끄떡없는 걸 보면 우리 선조의 건축기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네요.
청아한 풍경소리가 맑게 울려 퍼지는 비구니의 기도 도량인 초암사를 뒤로하고...
짙은 녹음이 우거진 숲에 들어서니 순박한 찔레꽃도...
뽕잎 사이 수줍게 숨은 오디도 어서오라 반기는군요.
죽계구곡을 향해 거침없이 쏟아지는 계곡 물을 보니 부채표 까스 활명수를 먹지도 않았는데 가슴이 뚫어 뻥 되는군요.
평소 그냥 지나쳤을 것들도 마냥 새롭고...
작은 배려에 감사하며...
복잡한 세상일은 고이 내려놓고...
본격적으로 산을 오릅니다. 직진이 국망봉 방향이며 왼쪽 오솔길이 달밭골로 이어지는 자락길 출발지입니다.
내가 떼거리 산악회 등산문화를 혐오해 늘 사람이 적은 한적한 산을 찾는데 철쭉개화 시기와 맞물린 철쭉제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의외로 한산합니다.
헐~ 붕어 알 친구이자 절친이며 페친이고 술친구인 영주시 의원을 여기서 만나는군요.
새벽 4시에 출발했다는데 "됐고!!! 배낭에 먹을 거 다 내놔!!! 뒤져서 나오면 김밥 한 줄당 열빵이다!!!"
오늘도 미세먼지가 매우 나쁨 수준이라 벌써 아가미가 뻑뻑해 오지만, 오랜만에 짙은 초록 사이로 맑게 갠 하늘을 봅니다.
슬슬 지체와 정체가 시작되는군요. 명절 고속도로도 아닌데 가다 서다를 반복합니다.
떼거리로 앞을 가로막고 지체를 유발하는 산악회에 짜증이 만땅 밀려오지만, 깊은 계곡을 흐르는 우렁찬 물소리에 마음은 설레고...
이름모를 꽃이며...
흔한 잡초와...
둥글레 꽃까지 어느 것 하나 신비롭지 않은 게 없네요.
벌써 진 철쭉을 사뿐히 즈려밟고 갑니다.
돼지바위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가팔라집니다.
몇 년 전 녀자 동창과 여길 올랐을 때 아이 낳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하길래 "도대체 애 낳는 게 얼마나 힘든데?" 하고 물었더니 "혓바닥을 뒤통수에 닿을 때까지 잡아당기는 고통"이랍니다. 쉽게 설명하니 대충 고통의 강도가 가늠이 되더군요.
슬슬 뭔가 멋진 풍경이 펼쳐지려고 합니다.
아~~ 이거거등...
내가 원했던게...
너희를 보려고 아침부터 그렇게 서둘렀단다.
아~ 온통 알록달록, 울긋불긋, 옅게 혹은 붉게 물들어가는 연분홍빛 철쭉이 바람에 일렁이며 살며시 흩날리는 향연은 내 짧은 필력으로는 도저히 표현을 못 하겠네요.
짙은 초록과 연분홍빛 조화가 절정을 이룹니다.
뒷덜미를 서늘하게 훑고 능선을 넘어가는 상쾌한 바람과 까슬까슬한 햇살 그리고 오랜만에 탁 트인 시야까지... 오늘 여기 오길 정말 잘했어.
왠지 바람에 흩날리는 철쭉꽃을 따라가면 복사꽃 반발한 무릉도원을 만날 것 같은 느낌...
목디스크 걸릴 각오하고 200mm 망원렌즈를 가져왔는데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네요.
오늘따라 비로봉 능선이 더 굵직해 보이는군요.
술 없이 석 달 열흘을 여기서 살라고 해도 나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
오월은 푸르구나~~
소백산에서 달이 먼저 뜨는 상월봉의 랜드마크인 바위가 선명하게 보이는군요.
비로봉 정상은 벌써 콩나물 시룹니다.
기왕 내친김에 철쭉 터널을 따라 비로봉으로 내쳐 보겠습니다. 국망봉에서 비로봉까지 약 3km...
아는 사람만 아는 할미꽃 군락지 할미꽃 열매의 듬성듬성한 털은 언제나 수수하고...
한달음에 달려가고픈 비로봉 능선은 바라만 봐도 넉넉하고 불혹의 끝자락에 서니 매사 조심스러워 새처럼 쪼그라 들었던 가슴이 갑자기 애드벌륜처럼 한껏 부풀어 오르는군요.
나이가 드니 정해진 시간에 삼시 세끼를 꼬박꼬박 먹어야 하는 정시 삼식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붕어 알 친구이자 절친이고 페친이며 술친구에게 강탈한 전리품입니다.
프랑스는 거지도 최소 3가지 코스요리를 먹는다는데 비록 작은 컵라면이 메인디쉬지였지만, 과일에 커피까지 먹고 나니 지금 이 순간은 프랑스 거지도 푸른 기와집에 사는 누님도 안 부럽네요.
정오가 지나자 햇살이 점점 강열해집니다. 내 피부는 소중하니까 흐트러진 화장을 고치고 비로봉으로 출발합니다.
철쭉이 절정일 무렵 소백산은 등산객으로 입추의 여지 없고 발 디딜 틈 없이 미어터지는데 올해는 미세먼지 탓인지 한산하네요.
철쭉군락지는 못 들어가게 울타리를 쳐 놨는데... 언제쯤 후진국형 떼거지 무질서 등산문화가 바뀔는지...
주목과 철쭉이 묘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지나온 국망봉을 돌아봅니다.
비로봉 아래엔 머리만 한 방울을 넥타이처럼 매단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울음을 울며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노닐 것 같은 멋진 풍광이 펼쳐집니다.
연화봉을 잇는 능선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지만, 오늘 저녁 중요한 약속이 있어 여기서 고마 하산해야겠네요.
다들 정상인증 찍어 카톡으로 날리려고 길게 줄을 섰군요.
도떼기 시장 같은 비로봉을 한 시간 정도 급히 내려오니 오늘의 목적지인 방앗간이 반깁니다.
이거거등~~
내가 멀리 삥 돌아 여기까지 온 이유가...
작열하는 오월의 햇살이 바늘처럼 콕콕 찌르는군요.
아쉽지만, 맥주 한 깡통으로 타는 갈증을 달래고 자락길을 따라 출발지인 초암사를 찾아갑니다. 여기서 초암사까지 또 3km..
다~ 왔습니다.
오늘 15km를 6시간 걸었네요.
인생이 내 입맛대로 모든 게 준비되어 있을 리가 만무하다는 것을... 놓친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해야 함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느낀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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