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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ain Climbing

소백산 설경

by 변기환 2013. 11. 30.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할 것 없이 차로 30분을 달려 두 시간이면 오를 수 있는 산이 집 근처에 있다는 건 산을 좋아하는 내겐 축복입니다. 소백산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산불감시단 발대식을 하는지 군기 빠진 당나라 군대처럼 주차장에 도열해 알 수 없는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삼가동 탐방지원 센터를 찾았더니 그동안 주차료를 받던 예쁜 새댁이가 그만뒀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평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로사 앞까지 차를 가져갔는데 낯선 새댁이 산불감시단 발대식에 윗분이 와 있으니 차를 주차장에 두고 걸어가라고 사정을 합니다.


그랴 일찍 집에 가 봤자 할 일도 없고 그동안 하프코스 만 다녔으니 오늘은 오랜만에 풀코스를 걸어보자.



10시 삼가동 탐방지원 센터를 출발합니다.



어제까지 초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렸는데 모처럼 늦은 봄같이 포근한 날씨에 몸도 마음도 발걸음도 가뿐합니다.



말 안 듣는 아이가 일부러 물웅덩이만 골라 첨벙거리며 걷듯 괜히 눈 밟는 느낌이 좋아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만 골라 다닙니다. 그리고 보니 올해 첫눈을 밟는군요. 이제 모든 것을 경험해 닳고 닳아 영혼까지 무뎌져 버린 마흔여섯...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지만, 첫눈을 밟는 느낌은 아직도 가슴을 뛰게 하고 마음을 설레게 하는군요.



꾸역꾸역 오르다 쳐다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비로봉 정상이 살짝 보입니다.



삼가동 탐방지원 센터를 출발한 지 정확히 2시간 10분 만에 비로봉에 도착했습니다. 예전에 산악마라톤 하는 분이 삼가동에서 비로봉까지 1시간 30분이면 오를 수 있다고 하길래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충분히 가능하겠네요.



칼바람으로 유명한 비로봉에 불어대는 바람은 비로사 쪽은 잠잠하지만...



정상석을 기준으로 단양 쪽은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얼굴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은 마치 칼로 베는 듯 날카롭습니다.



내년 3월 말까지 비로봉을 오르는 사람들은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과 매서운 추위를 경험할 겁니다.



도대체 산이 뭐길래 오르는 걸까요?



잠시 머물렀더니 손끝에 감각이 없네요. 서둘러 내려갑니다.



졸업시즌도 아닌데 키 작은 잣나무가 하얀 가루를 뒤집어썼네요.



상고대가 예쁘게 폈습니다.



영하의 온도 속에도 액체 상태로 존재하는 물방울이 나뭇가지를 만나 얼어붙은 게 상고대라고 합니다.



추운 산에서 따끈따끈한 컵라면을 먹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보온병에 물을 담기 전 끓는 물을 담아 3분 정도 뜨겁게 데운 후 팔팔 끓는 물을 담아야 오랫동안 보온이 유지됩니다.

라면이 잠길 만큼 물을 붓고 약 2분간 불린 후 버리고 수프를 넣은 후 라면이 잠길 만큼 물을 붓고 다시 1분 정도 불립니다. 1분 후 정해진 양의 물을 더 부어 드시면 됩니다.



점심을 먹고 쉬지 않고 서둘러 하산을 했더니 1시간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눈이 내려 미끄러운 겨울 산을 오를 때는 40리터 이상 큼직한 배낭에 여벌의 옷과 푹신한 무릎 담요 같은 것으로 충분히 채워야 뒤로 넘어졌을 때 머리나 엉덩이를 다치지 않습니다.



허전하고 쓸쓸한 가을이 가고 가슴과 옆구리 시린 겨울이 왔네요.



산 좋고 물 좋은 요지마다 자연을 파헤치고 우후죽순처럼 세워지는 펜션을 볼 때마다 자연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덜한 캠핑은 나라에서 보조금을 줘서라도 적극 장려해야 합니다.



바깥에서 자는 걸 싫어하는 집사람만 아니었다면 나도 캠핑에 목을 맸을 듯...



오늘 다녀온 거리가 12.6km... 시간은 4시간...



씻고 잠시 쉬다가 집사람과 장을 봐서 맛있는 저녁을 차렸습니다.



비린 거 전혀 못 먹었는데 나이가 드니 아직은 푹 삶아야 하지만, 굴도 먹을 수 있고 대충 씹고 넘겼던 과메기도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느껴지네요.

자꾸 몸과 맨탈이 나태해지는 불혹... 가끔 산에라도 올라 맨탈을 뽀끈 붙들어 놔야 일주일을 후회없이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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