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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ing

집사람 생일

변기환 2015.11.02 21:26

나나 집사람이나 서로 식성이 까다로워 사 먹는 음식이 잘 맞지 않아 집사람 생일과 결혼기념일엔 언제나 내가 요리를 한다. 바빠 아침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 이젠 아침 먹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집사람에게 담백하게 끓인 미역국에 하얀 쌀밥을 말아 억지로 몇 술 뜨게 했다.



아버지께서 며느리 생일이니 근사한 외식을 하라고 금일봉을 하사하셨지만, 그 돈으로 퇴근길에 장을 봐 집사람이 좋아하는 요리 몇 가지를 직접 만들었다. 꼬들꼬들하게 지은 밥에 레몬즙과 설탕, 소금을 휙~ 뿌려 간을 하고 오이만으로 깔끔하게 김밥을 말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대구로 전학을 가 잠시 큰댁에 얹혀 살았으나 중학교 1학년부터 동생과 자취를 했고 그때부터 소풍 김밥을 말았으니 나도 솥뚜껑 운전 경력이 꽤 된다.



스시처럼 고추냉이를 섞은 간장에 찍어 먹으면 환상...



간장과 참기름, 설탕으로 양념한 잡채... 근거 없는 말이겠지? 생일에 면을 먹어야 오랜 산다는 말이...



단 걸 좋아하는 집사람이 설탕을 더 넣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예전 같으면 등짝에 <주의! 성깔 있음!>을 써 붙이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겠지만, 나이가 드니 사그라지는 열정만큼 성질도 죽는다. 집사람 말처럼 이 나이에 건강 생각해서 음식 가려 먹는다고 천년만년 살 것도 아닌데 식성대로 먹는 거지...



집사람이 매콤한 게 먹고 싶다고 해 물오른 가을 무를 듬뿍 썰어 넣고 매운 고춧가루로 양념한 떡볶이도 뚝딱 만들었다. 설탕 대신 꿀을 넣었더니 달달한 거 좋아하는 집사람은 흡족해하는 눈친데 단거 좋아하는 술꾼없다.



떡볶이의 양배추는 양상추처럼 아싹아싹해야 어디 가서 <나 떡볶이 좀 만들어 본 사람이네> 하고 명함을 내밀 수 있다.



술안주는 마늘과 참기름, 조선간장으로 심심하게 간을 한 육회... 회도 잘 못 먹던 때가 있었는데 육회라 남은 세월은 나를 어떻게 바꿔 놓을는지...



왠지 몸이 건강해 질 것 같은 샐러드...



소박하지만, 정성이 듬뿍 담긴 생일상이 차려졌다.



생일 축하주는 막냇동생이 추석에 선물한 요리오(Jorio) 와인, 유명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과 <식객>에 등장해 국내외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이탈리아 대표 와인이다.



와인, 소주, 양주 이런 독한 술 안 좋아 하는데 어쩌튼 향도 좋고 분위기도 좋다.



행복이란 게 무지개 너머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정과 아이를 갖는 것이, 자식과 배우자가 건강한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이고 행복이다. 매년 생일상을 차려 줄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 정성을 알아주고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한 것이다. 행복 하다고 생각하면 다 행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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