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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ain Climbing

골 때리는 두타산

by 변기환 2013. 8. 11.

폭염특보가 내려진 토요일 골 때리는 산 두타산(頭陀山)을 다녀왔습니다. 아침 7시에 알람을 맞춰 놨는데 나이가 들어선지 기상 30분 전 자동으로 잠이 깨는군요.


작고 가벼워 휴대성 하나는 끝내주는 E-420 바디에 40-150mm 망원렌즈를 가져왔는데 이놈이 부분파업을 했네요. 오늘 찍은 사진 대부분이 안드로메다로 갔습니다.


오르막 쎈 해발 890m 넛재를 넘고 육송정을 지나 일제 강점기 버러지 보다 못한 일본 놈이 뚫었다는 구문소 옆 석문을 통과 하니... 고원 휴양 도시, 산소 도시, 레저 스포츠 도시 태백이래요. 



두타산은 무릉계곡을 출발 두타산성을 지나 정상을 오르는 코스가 볼거리 많고 시원한 계곡물이 흘러 좋긴 한데 경사가 심해 오늘 같은 날 쓸데없이 힘든 코스를 고집했다간 견고생 할 수 있으니, 거리는 더 멀지만 덜 힘든 댓재에서 두타산을 오를 겁니다. 뭐 그래 봤자 오십보 백보지만...


댓재에서 두타산까지 전체 경로를 네이버 지도로 확인하면 2.4km, 1시간 20분 소요되는 것으로 나와 있는데 이거 믿었다가는 큰 낭패를 봅니다.



경로를 확대해 보면 여러 구간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이걸 다 더하면 전체 경로가 6.5km 3시간 이상 예상하셔야 합니다. 댓재에서 통골목이 구간은 2.6km 1시간 30분 소요



통골목이에서 두타산 구간은 4km 2시간 소요

이제껏 찍은 사진 다 날아가고 뜬금없이 이 사진부터 저장되었네요. 댓재에서 햇대등, 통골목이까지는 그런대로 쉬운 편이나 통골목이에서 두타산 정상까지는 이마가 땅에 닿을 만큼 많이 가파르고 힘듭니다.


목구녕에서 제트기 날아가는 소리가 나네요. 쎅~ 쎅~ 쎅~



오를 때 힘들면 내려갈 때는 쉽겠죠?



저기 가운데 봉긋하게 솟은 산이 두타산입니다. 아직 한참을 가야겠군요.


오늘 날씨... 그냥 굽고 찌지고 뽂네요.



바람아 나는 알아야겠다. 니가 왜 한 곳으로 만 부는지를...



1시간 걷고... "10분간 휴식!!!"



풍수가 뭐길래 이 높은 곳에 묘를 써 놨으니 제삿밥 드시러 오르내리기 얼마나 힘들까요?



땀을 한 됫박 흘리며 두타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두타산을 농담으로 골 때는 산이라고 표현했는데, 두타산은 부처가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타는 산스크리트어의 dhuta를 음역한 것으로 승려가 의식주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수행 정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법정 스님께서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입안에 말이 적어야 하며 마음에 일이 적어야 한다고 하셨으니 이는 dhuta와 같은 맥락입니다.



댓재에서 두타산까지 6.1km라고 했는데 GPS 로그를 보니 7km로 기록되었으며, 2시간 41분 걸렸으나 중간에 휴식 20분 빼면 실제로는 2시간 20분 정도 되겠네요. 목구녕에서 제트기 날아가는 소리가 날만도 했습니다.



사진 찍히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고글을 썻으니 100만 년 만에 얼굴 못 알아보는 긴장한 사진 한 장 올려봅니다.



이열치열 점심은 뜨끈뜨끈한 컵라면... 뜨거운 물 붓고 인고의 4분을 기다렸다가 허겁지겁 한 젓가락 떠 보지만 넘어가지를 않네요. 더위에 입맛을 잃었습니다. 몇 젓가락 뜨고 포기...



점심 대신 시원한 냉커피 한 잔 하는 동안 GPS 로그 기록하느라 방전된 스마트폰을 충전합니다. 어딘선가 까마귀 한 마리가 시끄럽게 울어대고 근처에서 점심 먹는 처자들 소프라노 급 수다가 고막을 찌르는군요.



선선한 바람이 불더니 이내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오고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부을 듯 연신 낙뢰가 내리칩니다.



두타산에서 3.6km 거리에 있는 청옥산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로 계획했으나, 두타산과 청옥산은 능선으로 이어진게 아니라 두타산을 다 내려갔다가 다시 청옥산을 올라야 한다는 말에 바로 꼬리 내리고 서둘러 하산합니다.



하산은 등산의 역순... 당연한 말이지만, 올라올 때 힘든 만큼 내려갈 때는 상대적으로 쉬운 게 만고진리...



이분 참 대책 없는 사람입니다. 곰만 한 덩치에 헬리콥터 같은 숨소리를 내며 이 시각에 두타산을 넘어 무릉계곡으로 하산하겠답니다. 괜한 객기 부려 119 산악구조대 고생 시키지 말고 무사히 잘 넘어가던지 아니면 현실을 파악하고 되돌아 오삼.



다~~~ 내려왔습니다. 한 번도 안 쉬고 내리 달렸더니 2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대충 땀 떨어내고 나니 비바람이 거칠게 몰아칩니다. 늦게 올라간 대책 없는 등산객이 걱정 되는군요.



에어컨 틀어놓고 휴게소에서 산 시원한 사이다 한 깡통 마시며 잠시 더위를 식히는 사이 빗줄기는 점점 더 굵어집니다.


그동안 산을 오르면서 산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산을 정복하기 위해 오르는 건 아닌지...

이제껏 오른 산 높이만큼 겸손해졌는지...


다시 한번 나를 돌아봅니다.




정상에 선다고 세상을 다 보지는 못한다.

정상에 오르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를 알 뿐...


최초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Sherpa  - Tenzing Norg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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