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팔공산

토요일 일찍 일어나 팔공산으로 향합니다. 모 아웃도어 메이커에서 매주 토요일 진행하는 행사가 이번 주는 팔공산이라 몇몇 선수들과 정상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올들어 팔공산과 금오산을 세 번씩이나 올랐네요.

9시 20분 탑골 동화 캠프장을 출발...

팔공산 주봉인 비로봉은 군사시설 및 방송 통신시설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그동안 민간인 출입을 금지했다가 4년 전인가 개방했습니다. 그래서 입구에서 동봉 근처까지 비로봉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없습니다. 동봉 이정표를 따라 가시면 됩니다.

깔딱 고갠지 껄떡 고갠지를 가뿐하게 오릅니다.

한참 계곡을 타고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멀리 바로봉 안테나가 보이네요. 부지런한 구미 선수가 몇 시에 출발했는지 벌써 정상에 올랐다고 독촉 무전을 마구 때리는군요.

무전기 성능이 얼마나 좋은지 직선거리 210km가 넘는 강원도 인제군 방태산 정상과 또렷하게 교신이 가능합니다.

본격적으로 팔공산을 오르는 가파른 구간이 시작됩니다.

경치가 끝내줄 것 같은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낙타봉 전망대...

아쉬운 마음에 케이블카 정상을 바짝 땡겨봅니다.

시원한 바람 한 줄기 불더니 순식간에 구름이 팔공산을 집어 삼키는군요. 소나기 쏟아질 조짐이 보입니다.

이 지점이 수태골과 연불암, 탑골 동화 캠핑장으로 갈라지는 구간입니다.

전에 여기서 아이스께끼를 사 먹었다가 얼마나 꽁꽁 얼었는지 혓바닥이 달라 붙을 뻔한 트라우마 때문에 아이스께끼 통만 봐도 가슴이 털썩 내려앉는군요.

갈림길에서 비로봉까지 1.1km...

요즘 잇몸치료 하느라 며칠째 금주를 하고 있는데 - 그래 봤자 사흘 - 전날 술을 먹으나 안 먹으나 힘들긴 매한가집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정상이 가까워져 오자 이정표에 비로봉이 보입니다.

다~~~ 왔네요.

땀을 한 바가지는 흘린 것 같은데 정상에 올라서니 싸늘한 게 덜덜덜 떨리네요. 악착 같았던 무더위도 다 갔습니다.

비로봉과 동봉 사이에 있는 약사여래불을 땡겨봅니다.

비로봉을 기준으로 300m 동쪽에 있는 동봉

서쪽 바로 코앞에 있는 서봉

비로봉 정상에는 표시석이 없다는 말에 팔공산을 두 번이나 올랐으면서 정상은 안 밟았는데 전망이 끝내준다는 말에 올라보니 여긴 완전 신세계네요.

규모가 ㅎㄷㄷ한 방송 통신시설을 보고 길도 없는 산꼭대기에 어떻게 자재와 장비들을 날라왔는지 궁금했는데 정상 뒤편으로 도로가 나 있었네요.

전망 죽이고...

정상석인척...

뒤늦게 올라온 문경 상지여자고등학교 선수가 지도하고 있는 등산부 학생들을 데리고 왔네요. 덕분에 컵라면으로 때울 점심을 학생들이 바리바리 싸온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유부초밥이며 볶음밥이며 여러 가지 알록달록한 반찬을 해 온 게 기특하여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 준비하느라 바빴겠네" 하니까 "엄마가 해 줬는데요" 그럼 그렇지...

구르는 낙엽에도 웃는다는 여고생들 소프라노 급 재잘거림에 괜히 덩달아 설레고 기분이 좋아지네요. 가끔 고등학교에서 특강을 할 때 가슴에서 뭔가가 치밀어 오르고 목덜미가 뻣뻣해지는데 교실 밖에서 또 다른 모습을 봅니다.

구미 선수는 문경 선수가 꽁꽁 얼려온 맥주를 운전 때문에.... 하면서 홀짝홀짝 잘도 마시는군요. 한 깡통 하고 싶은데 그놈의 잇몸 때문에...

구미 선수가 며칠 전 수령한 가을 유니폼을 나눠주네요. 왜 하필이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검정색을...

요즘 등산복이 기능은 스파이더 맨 쫄쫄이 수준이면서 가격은 아이언 맨 슈트 급입니다.

그렇게 유쾌 상쾌하게 3시간을 떠들고 놀다가 하산합니다. 내려올 때는 총알 같이...

듣기좋은 콧노래도 한두번이라고 팔공산도 세번 오르니 지겹네요. 팔공산아 우리 이제 그만 인연 끊자!!!